지역 거점 국립과학관이 운영 초기부터 줄줄이 겉돌고 있다. 대구와 광주과학관에 이어 부산과학관까지 중앙 정부와 지자체·지역 과학계 간 갈등으로 개관과 정상운영에 차질이 우려된다.
지난달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산과학관을 국립과학관법인으로 설립 운영한다는 ‘과학관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하 과학관육성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부산과학관은 현재 부산시 기장군 동부산관광단지에 건설 중이다.
국립과학관 법인화는 국가가 지원하되 운영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진 법인에 맡긴다는 취지다. 국립부산과학관 법인 설립은 대구, 광주에 이어 세 번째다.
과학관육성법 개정안 통과에 따라 국립부산과학관은 3개월 내에 법인 이사장과 초대관장 선임, 정관 작성 등 법인 설립 준비과정을 거쳐 오는 6월 국립부산과학관법인으로 정식 출범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첫 단추인 법인설립위원회 구성에서 미래부와 지자체 및 지역 과학계 간 입장 차가 커 이대로라면 오는 6월 개관은 물 건너갔다. 10월로 예정된 정상 운영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법인설립 지연은 과학관 직원 채용부터 전시물 설치와 시운전, 시범 운영 등 개관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법인설립위 구성 놓고 갈등
논란의 핵심은 국립부산과학관 법인설립위원회(이하 법인설립위) 구성이다.
법인설립위는 이사장과 초대관장 추천, 정관 작성 등 과학관 설립과 운영에 관한 주요 권한을 가진다.
지난달 미래부 과학관건립추진단은 9명으로 예정(규정상 10명 이내)된 법인설립위원 중 6명을 미래부 추천 인사로 선임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국가 시설이고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 아래 과학관 건립비의 재정분담 비율(국비 70%, 지방비 30%)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부산시와 지역 과학계는 말도 안 된다며 발끈했다. ‘권역별 거점 과학관’이라는 목적과 과학관육성법 개정 취지에 맞게 지역 대표성을 지닌 산학연관 인사를 절반 이상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지난달 법 개정에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닌 법인 설립 내용이 포함됐고 과거 미래부 제3차 과학관 육성기본계획(2014~2018년)에 ‘민간단체 법인’으로 명시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미래부와 기재부, 부산시 간 체결한 업무협약서 4조(운영방식) ‘부산과학관은 독립법인을 설립해 운영하되 법인의 설립방법, 운영방식 등은 미래부가 부산광역시의 의견을 들어 정한다’는 규정도 덧붙였다.
특히 건립비나 운영비 분담 비율을 법인설립위 구성에 적용하는 것 자체에 강하게 반발했다. 지방 재정상황을 무시한 권위적 발상이라며 지자체가 30%를 부담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지역이 더 배려돼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2013년 개관한 대구와 광주과학관 또한 설립 과정과 운영 초기 여러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었다. 법인으로 출발했지만 민간과 연계하지 못해 개관 1년이 지나도록 후원회를 구성하지 못하는 등 법인화 취지를 살리지 못해 결국 지난 1월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이와 달리 해외 선진 과학관은 이사회 등 운영 주체의 80%를 지역 산학연과 인사로 채워 과학관 경영에 대한 방향 제시와 감시는 물론이고 과학관 후원을 주도하고 있다.
부산시와 부산 과학계는 법인설립위 구성 문제와 함께 미래부의 과학관 추진 조직의 기능상 문제점도 거론했다. 과학관 건설 공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과학관건립추진단이 법인설립위 구성과 관장 선임 등 운영 방향에까지 개입해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주장이다.
부산 과학계는 과학관 건립 이후 법인설립위 구성과 법인 설립, 이사회 구성 등 운영에 관한 결정 사항은 과학관법인화의 목적과 과학관 육성법의 취지를 잘 아는 미래부 본부 조직이 담당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자율 운영 VS 정부 관리
미래부와 부산시·부산 과학계 양측의 주장은 결국 국립과학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의 시각차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즉 ‘지역과 민간 중심의 자율적 운영’에 무게를 두느냐, 아니면 ‘정부 주도의 운영과 관리’에 무게를 두느냐의 대립이다.
부산시와 부산 과학계는 민간의 자율성과 효율성 활용, 지자체와 기업 등 지역사회의 참여와 후원을 통한 ‘시민참여형 과학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과학관 법인화 취지에 맞고 선진국형 과학관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라는 것이다.
손동운 부산과학기술협의회 상임 이사는 “과학관 육성법의 핵심은 과학관 운영을 전문 독립법인에 맡기는 것이고 이는 공무원 조직의 비대화를 막고 민간의 창의성과 효율성을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연구개발사업 선정 때나 적용하는 대응자금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대구, 광주과학관처럼 전현직 정부 고위직을 법인설립위에 포함시킨 뒤 관장으로 앉히려는 수순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산과학계는 지역 정치계와 함께 미래부가 정책 및 법률 규정을 어긴 사례를 수집해 국정 조사를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시의회에 지방비 분담 중단 요청 등 다각도의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미래부는 국가 시설인 만큼 국가에서 책임지고 운영 관리해야 한다는 원론적 방침을 밝혔다.
마창환 미래부 과학관건립추진단장은 “과거 대구와 광주과학관도 같은 절차와 방식으로 개관을 준비했는데 부산만 달리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산시와 지역 과학계의 과학관 발전에 관한 의지를 잘 알고 있는 만큼 법인설립위 구성 논의 과정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표-국립과학관 특성화 방향
*자료 : 미래부
표-국립과학관 운영체계 비교
부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