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의 전기차 충전인프라 시장 참여로 민간 업체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포스코ICT는 이미 지난해 BMW코리아·충전기 중소업체와 손잡고 이 시장에 진출했다. 지금까지 약 120여개 대형 유통·할인점에 충전소를 구축, 유료서비스 사업 기반을 다져왔다. 하지만 사업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전기차 보급 상황을 주시하며 충전서비스 시장 진출을 타진 중인 LG CNS·GS칼텍스 등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한전 가격경쟁력·업무처리 능력서 절대적 유리”
민간 업계는 가격뿐 아니라 충전인프라 구축·운영 등 사업 전반에서 ‘게임이 안 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사업 초기 구축비를 제외한 운영비(OPEX) 중 전력비용이 차지하는 원가는 30~40%를 차지하기 때문에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충전이용에 따른 단순 전기요금 뿐 아니라 충전기 계약전력(50㎾h)에 따른 기본요금이나 설비 구축에 필요한 인허가까지 한전 고유 권한이다.
업계는 한전SPC가 동일한 전기차 전기요금제도에서 경쟁한다 해도 충전설비 구축을 위한 전기공사나 설비 유지보수 및 계량기 인가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본다. 주민동의를 얻거나 충전소 구축을 위한 부지 확보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원가경쟁력 뿐 아니라 사업 전반의 시간과 비용 면에서 열위에 설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또 산업부까지 나서 한전SPC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확보 역시 쉽지 않을 전망이다. 우리나라 전기차 시장점유율 1위 현대기아차가 한전SPC 지분에 참여한다. 이 때문에 민간 업체는 당분간 현대기아차를 고객으로 확보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공공시장 역시 한전SPC가 선점했다. 한전SPC는 산업부 정책에 힘입어 향후 3년간 공공기관·공기업이 교체 예정인 수천대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을 도맡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전의 시장 참여로 민간사업자는 경쟁력을 한 수 접고 불리한 상황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며 “한전SPC가 전기요금제에서 경쟁한다 해도 충전소 구축에 따른 행정적·물리적 절차에서 인력소모, 비용면에서 월등한 우위에 있는 만큼 이미 모순된 경쟁”이라고 말했다.
◇“창원 충전인프라 사업은 규정에도 안 맞아”
한전의 시장 참여는 우리나라 전기차 보급 주무부처인 환경부 정책과도 상반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부는 민간 대상 전기차 보급과 함께 신속한 충전기 보급을 위해 당초 완성차 업체와 충전기 업체가 협력하는 방식의 보급정책을 지지해왔다. 하지만 한전이 창원시 정부 보급 사업에 충전기 구축 전담을 맡게 됨에 따라 이 같은 규정을 어긴 셈이다.
환경부는 민간이 전기차 구매와 동시에 전기차-충전기 호환 등 안정적인 사용을 위해 2013년부터 완성차-충전기 업체 간 협력을 규정해 왔다. 더욱이 한전이 충전인프라 사업 참여로 기존 충전기 업체는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는 한전이 자본만 투자하는 게 아니라 중소기업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충전기 업체 관계자는 “통신시장만 보더라도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같은 대기업이 서비스를 맡고, 중계기 같은 영역은 중소기업이 잘 하도록 장려하지만 충전인프라 시장은 정반대다”라며 “한전SPC가 제주와 창원에 충전인프라 구축에 나서는 순간 중소기업은 한전 하도급업체로 전락하는 것은 물론 구축비용 등 소비자 가격 역시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 사업 참여 말고도 효과적 지원책 많아”
충전인프라 관련 업계는 산업부와 한전이 시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고도 전기차 및 충전인프라 확충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 많다고 주장했다.
지금 단일화된 전기차 전용 전기요금제를 보다 다양화해 민간사업자의 초기 운영비 부담을 덜어주는게 대표적으로 꼽혔다. 앞으로 충전 이용자가 늘어나는 만큼 사업성 확보때까지 정부차원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정부와 민간이 구축한 우리나라 급속충전기 이용률은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이용이 적거나 없더라도 연간 수백만원의 전기요금을 낼 수밖에 없는 요금제도다. 한전 전기차용 전기요금정책에 따르면 20분 가량 전기차 충전이 가능한 급속충전기(50㎾급)를 설치하면 사용과 상관없이 매월 12만9000원의 기본요금이 과금된다. 해당 시설물 내 전기차가 한 대도 없더라도 급속충전기가 설치됐다면 연간 155만원의 전기요금을 입주민(사) 모두가 공동 부담해야 한다. 정부가 전기차 보급 활성화를 위해 앞서서 전국에 급속충전기 약 200기를 깔았지만 아직 적은 전기차 보급 수 때문에 이용률은 극히 저조하다. 전기차 전용 전기요금을 일시적으로 보조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전이나 정부가 민간 시장에 직접 나서기 보다는 민간이 사업을 할 수 있는 시장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며 “전국에 설치된 충전인프라 활용을 높이는 방안과 함께 합리적인 전기요금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