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기기와 소프트웨어 분야의 글로벌 선도 기업 지멘스는 전체 연구인력 3만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자동차부품업체 보쉬는 핵심부품인 연료 인젝터에 전자태그(RFID)를 부착해 수십만 가지에 달하는 제품조합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BMW는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 생산현장의 가변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제조업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각기 업종과 주력 분야가 다른 이들 독일 기업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제조업과 정보기술(IT)의 융합이다.
독일은 정부 차원에서도 제조업의 일대 혁신을 꾀하고 있다. 대학과 연구소 등 관련 연구기관을 망라하고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기업을 끌어들여 제조업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관련 분야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신개념이 적용된 시범공장을 개발하기 위해 독일의 민관이 함께 내딛는 행보는 눈부실 정도다. 이러한 노력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는 ‘스마트 공장’이다.
알려진 대로 독일은 제조업 강국이다. 독일 제조업은 유렵지역 총 제조업 부가가치의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1400만명에 달하는 직간접 고용인원으로 전체 고용의 35%를 차지하는 국가경제의 중추다. 도제-마이스터로 대표되는 기능인력 훈련제도가 배출한 풍부한 숙련공,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와 체계적인 R&D 시스템, 톱니바퀴처럼 물려 있는 기업지원 시스템이 세계 최강의 독일 제조업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러한 독일도 자국 제조업의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 원가경쟁력으로 무장한 신흥국 추격과 기술을 앞세운 여타 선진국과 치열한 경합 속에 갈수록 심화되는 생산인구 감소 추세가 위기의식의 바탕에 깔려 있다.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에너지 소비량이 높은 것도 문제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 제조업 주도권을 지속하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제조업 생산모델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문제의식이다. 이른바 ‘인더스트리 4.0’이 태동한 배경이다.
스마트공장과 인더스트리 4.0이 추구하는 목표는 같다. 설비·공정을 지능화, 네트워크화하고 생산과정 전반의 유연성을 높여 협업적 운영이 지속될 수 있는 생산체제를 지향한다. 기존 생산방식처럼 공장과 기계, 사람이 각각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사람, 인터넷 서비스가 상호 연결되는 생산 패러다임의 획기적 진화를 꾀한다. 이를 위해 ICT와 제조업의 융합을 통한 경쟁력 유지·강화가 핵심이다. 다품종 대량생산이 가능한 가볍고 유연한 생산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사물인터넷(IoT)과 사이버물리시스템 기술은 필수다.
스마트공장으로 대변되는 제조업 혁신은 그간 인류가 경험해온 산업혁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서구 산업혁명이 변혁의 출발점이었다면, 컨베이어벨트와 전기동력을 이용한 2차 산업혁명은 생산방식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전자기술과 IT를 통한 자동화의 진화로 3차 산업혁명을 거친 데 이어 제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지칭되는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이전의 혁명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4차 산업혁명의 파장 역시 규모와 범위가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나라에도 중대한 기회이자 변곡점이 될 것이다. 제조업과 IT분야의 강점을 살려 효과적으로 기술융합을 실현한다면 제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제조업 진화에 적절히 대응해 전문 인력을 중심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동의 고도화로 고임금 고령화 구조에 대처할 수 있다. 차제에 고부가 생산을 통한 경쟁력 유지라는 궁극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제조 시스템 전반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정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제조업혁신 3.0에 기대를 거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해당 분야를 둘러싼 국가 간 표준화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선점 경쟁을 주도하기 힘든 후발주자 입장에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표준화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실질적 협업에 나서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제조업 전반의 시대적 전환과 변화의 큰 흐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권혁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 koco@kitech.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