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계 저가경쟁이 도를 넘었다.
세계적인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이 겹치면서 적정 마진을 무시한 채 물량 처리에 나섰다. 중국의 신규 생산 가세로 범용 유화제품 시장은 ‘바닥 경쟁’이 더욱 극심해질 전망이다. 가격경쟁으론 중국을 넘어설 수 없다는 속설이 유화시장부터 입증됐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석유화학제품 국내외 가격이 바닥을 모른 채 곤두박질치면서 우리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공급 과잉에다 중국 등 신규 시장 생산물량 증가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글로벌 유화시장에서 지켜져 온 적정가격선이 무너지고 밀어내기식 영업이 판치고 있다.
한 화학기업 해외영업 담당자는 “얼마 전 거래처로부터 다른 기업이 같은 제품가격을 20% 이상 낮춰 공급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며 “가격경쟁은 어느 때나 있어온 일이지만 경쟁 업체가 제시한 가격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도 “영업에 있어 최저 판매 가격선이 있는데 이 수치가 점차 사실상 무너졌다”면서 “입사 이후 이렇게 낮은 가격으로 영업하기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범용·특화 제품을 가리지 않고 대다수 제품군에서 가격 하락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석유제품 정보기관인 플래츠에 따르면 PVC 가격은 지난 2013년 톤당 1000달러 수준에서 거래됐지만 지난해 900달러대 초반에서 800달러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PVC는 LG화학, 한화케미칼 등 우리나라 기업의 주력 생산품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제조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생산물량이 급증했다. 업계는 중국에만 PVC를 생산하는 기업이 약 2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우리 정유업계가 대대적인 투자에 나선 PX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한때 쏠쏠한 재미를 안겨줬지만 지난해 가격 낙폭이 가장 컸다. 2013년 시장 평균가격은 톤당 1475달러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900달러대 초반까지 떨어져 고부가가치 제품이란 이름을 무색케 했다. 역시 중국 기업이 공급량을 늘린 데 직격탄을 맞았다.
이같은 상황은 고스란히 유화기업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지난해 우리나라 주요 석유화학기업은 주력인 유화부문에서 대다수 마이너스 성장에 그쳤다. LG화학은 지난해 매출 22조5778억원, 영업이익 1조3108억원의 실적을 거뒀다. 매출은 전년보다 2.4% 떨어진 데 비해 영업이익은 24.8%나 줄어 수익성이 특히 악화됐다. 한화케미칼도 지난해 유화사업 부문에서 영업손실 160억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회사가 유화사업 부문에서 연간 적자를 기록한 것은 최근 20년 동안 처음이다. 롯데케미칼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28.1% 감소한 350억원, 매출액은 9.6% 줄어든 1조4859억원이다.
업계는 공급 과잉으로 가격 경쟁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가격이 낮아지는 악순환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각사가 EVA, ABS 등 일부 특화 상품으로 시장에서 안정적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대다수 제품군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마진율이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원가 절감 등 기초 체력을 기르는 데 주력해야지만 거대 내수 시장을 보유한 중국 기술력이 올라서는 등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