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장비 업체들이 제 살 깎아먹기로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아예 무상 지급하겠다는 곳도 나올 정도입니다. 서로 죽자는 거죠.”
지난주 중국 최대 규모 디스플레이 전시회에서 만난 국내 장비 업체 관계자 전언이다. 최근 중국 주요 패널 업체들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액정표시장치(LCD) 설비 증설에 적극 나서면서 국내 업체 간 과열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상 삼성·LG디스플레이에 레퍼런스를 확보하고 있거나 중국에 시장 기반이 있는 업체는 ‘대어’를 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일부 업체는 이미 올 1분기 중국에서 1000억원 이상 매출을 확보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중국에 기반이 없는 대부분 후발업체들은 오로지 가격으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반값으로 대폭 가격을 낮추거나 공짜로 공급하겠다고 나서는 곳도 있을 정도다. ‘재고떨이’가 목적이라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회사 수익에 엄청난 마이너스다.
일각에서는 중국 패널업체가 가격 인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도입할 국산 장비를 정해 놓고는 단가 인하 목적으로 국내 업체 3~4곳에 입찰 참가를 유도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과당경쟁으로 인해 중국 업체 가격 저항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웬만한 가격 인하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한번 내려간 가격은 오르기 힘들다. 다음 입찰에도 영향을 끼친다. 결국 시장 자체를 죽이는 꼴이다.
염려스러운 것은 중국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들의 장비 국산화 전략이다. 이들은 정부 지원으로 빠르게 디스플레이 소재와 핵심 장비를 국산화하고 있다. BOE는 ‘시니화’라는 별도 법인을 세워 국내 장비 따라잡기에 나서고 있다. 국산 장비 공급 기회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결국 국내 업체가 중국시장 선점을 위해 선택한 일시적인 파격 인하 전략이 부메랑이 돼 ‘목줄’을 파고들 수 있다. 수십 년간 땀과 열정으로 쏟아 만든 제품인 만큼 높은 기술력과 서비스로 ‘프리미엄’ 제품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가격’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건 위험하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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