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수백억원을 투입해 10여년간 개발한 ‘한전 PLC(전력선통신)’ 칩에서 기술특허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전기연구원·한전KDN·젤라인 등과 함께 개발했지만 정작 특허권은 젤라인 독점으로 넘어갔다. 공기업 특허관리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전은 최근 국가 원격검침인프라(AMI) 구축사업 일환으로 ‘G타입 모뎀(2만대 분량) 최저가 입찰’ 공고를 내면서 젤라인 단독 특허기술료(장비가액의 1.62%)를 제품 원가에 반영해 낙찰 사업자가 이를 부담하도록 했다. 이 기술은 정부예산을 포함해 한전과 한전KDN·젤라인 등이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약 700억원을 투입해 완성한 한국형 PLC칩 기반 기술이다. 정부 예산(50%)을 제외하고 한전과 한전KDN이 투입한 자금만 100억원에 달한다.
한전은 한전PLC를 국가표준(KS) 규격으로 정하고 올해 구축되는 230만호 AMI 구축사업을 포함해 2020년까지 2194만호 구축사업에 이 칩을 활용하기로 했다. 오는 2020년까지 약 850만개 칩이 사용될 예정이다. 단순 계산만으로 젤라인에 지불할 특허료가 100억원에 달한다.
정부예산과 공기업 회계가 투입됐음에도 특허관리 소홀로 중소사업자가 특허료 부담을 떠안게 됐다. 1999년부터 진행된 수차례 개발과제에서 다섯 특허기술이 나왔다. 한전과 한전KDN은 2002·2003년 두 차례 공동특허를 획득했지만 2005년부터 세 차례 진행된 추가 특허는 젤라인이 단독 출원했다.
한전 관계자는 “1999년부터 국가 과제를 이용해 한전PLC가 완성됐지만 젤라인이 주장한 특허기술이 개발과제와 직접적 연관성을 증명하지 못해 경상기술료(1.62%)를 부담토록 했다”며 “해당 특허는 젤라인이 과제 기간 이후에 등록했기 때문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전은 이 같은 공식입장과 달리 뒤늦게 해당 특허 공동소유권을 획득했다. 소유권 신청일이 지난해 AMI구축 사업 업체 선정 후 업체가 특허료(7억5000만원)를 완납한 다음 날이다.
한전이 획득한 공동소유권 지분은 0.1%로 99.9%의 젤라인과 함께 이름만 올린 셈이다.
국가 입찰에서 최저가방식이면서 특허료 지불까지 명시한 것도 논란이다. 지난해에는 낙찰자가 젤라인과 협상하도록 한 것과 달리 한전이 직접 나서 젤라인 특허료를 보장해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과제 총괄책임기관인 전기연구원 관계자는 “젤라인은 중기거점과제 직후 전력IT 과제가 나오기 전 공백(3개월) 기간에 절묘하게 단독 특허권을 획득했지만 규정상 위반은 아니다”며 “다만 3개월 기간 동안 해당 기술 개발은 불가능하고 한전이 이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특허료를 사업에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