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이동통신 시장에 지각변동이 예고된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은 영국 이동통신사 ‘3(Three)’를 운영하는 허치슨 왐포아가 텔레포니카로부터 ‘O2’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25일 보도했다. 허치슨 왐포아는 홍콩 재벌 리카싱 회장이 소유한 기업이다.
허치슨 왐포아의 O2 인수금액은 92억5000만파운드(15조1600억원)다. 향후 3와 O2가 합병할 경우 10억파운드를 더 지불한다. 인수 규모는 리카싱 회장이 해외기업 인수에 투자한 금액 중 최대다. 텔레포니카는 당국의 허가를 얻어 오는 2016년 6월까지 매각 작업을 마무리 짓겠다고 전했다.
이번 인수는 두 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스페인 기업인 텔레포니카는 O2를 매각하고 유럽보다 남미 시장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허치슨 왐포아는 O2 인수가 유럽 이동통신시장 영향력을 넓히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텔레포니카는 지난 2005년 영국 O2를 인수했지만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사업을 확장하는데 고전했다. 특히 TV와 인터넷 서비스 등을 결합한 상품을 앞세운 경쟁자들 사이에서 이동통신 하나로 시장을 개척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올 1월 텔레포니카 투자자들은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470억유로에 달하는 부채 우려가 커졌고 회사는 O2를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고 유럽보다 브라질 등 남미 시장에 매진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허치슨 왐포아는 지난 1994년 영국에서 이동통신사 ‘오렌지’를 출범하며 유럽 이동통신 시장에 처음 진출했다. 이후 1999년 독일 마네스만그룹에 회사 지분을 넘기고 2000년 영국과 이탈리아에 첫 3세대(G) 네트워크를 구축해 다시 시장에 진입했다. 이 밖에도 ‘오렌지 오스트리아’를 13억유로에 인수하고 아일랜드 이동통신사 O2와 3를 합병하는 등 유럽 시장에서 세력을 넓히는 중이다. 회사는 인수합병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네트워크 망구축이나 상품 판매 등에서 가격경쟁력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조사업체 CCS인사이트 케스터 만 애널리스트는 “이번 인수 결정은 두 회사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라며 “시장에서 취약한 이동통신 서비스 단일 상품 제공업체가 빠르게 멀티플레이어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이번 인수는 영국 이동통신시장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전망이다. 영국 주요 이동통신사는 4개에서 3개로 줄어든다. 점유율 순위도 뒤바뀐다. 3와 O2는 총 32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게 돼 단숨에 시장 1위 사업자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1위 업체인 EE(Everything Everywhere)는 2800만명, 보다폰은 20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영국 방송통신 관리감독기관인 오프콤(Ofcom)은 정밀한 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거 유럽 내 이동통신사 대규모 합병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인수 승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란 예상이다. 최종 승인 여부는 유럽연합(EU) 집행기관인 유럽위원회에서 결정된다.
향후 영국에 시장 경쟁 활성화를 위해 신규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가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만 애널리스트는 “한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는 신규 MVNO가 탄생하는 것”이라며 “이동통신사업이 없는 영국 TV·인터넷 서비스 사업자 스카이에게 제안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인수가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체 통신산업 변화의 전조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유럽 이동통신시장은 경쟁 확대로 운영 수익이 줄고 규제 압박이 심해지고 있어 기존 가입자를 유지하거나 수입을 확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유럽 통신사들간 통합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영국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자료: 월스트리트저널, 2014년 조사 기준)>
김창욱기자 monocl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