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는 다소 이색적인 공상과학(SF) 영화다. SF영화가 흥행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꼽히는 외계인, 로봇, 우주 전쟁 등 자극적 장면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지구에서 600㎞ 떨어진 우주 공간에 홀로 남은 한 지구인이 살아남기 위해 사투하는 이야기다.
그래비티는 주인공이 우주에서 겪는 절망감, 공포, 고독 등을 관객에게 전달하며 호평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322만명을 웃도는 관객을 동원했다.
그래비티가 표현한 무중력 상태 우주 배경은 차세대 촬영 기술의 백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그래비티를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영화 촬영에 앞서 4년여간 무중력 촬영 기술을 개발했다.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카메론 등 여러 감독에게 조언을 받았다. 물리학자와 특수효과 작업을 담당하는 포스트프로덕션도 새로운 촬영 기술을 개발하는데 참여했다.
쿠아론 감독은 발광다이오드(LED) 180만개를 설치한 라이트 박스(Light box)를 활용했다. 배우가 라이트 박스에 들어가면 카메라가 주변을 움직이며 촬영하는 방식이다. 거리감과 무중력 상태를 연출해 화면에 담았다.
이후 후반작업과 컴퓨터 그래픽(CG) 합성으로 우주 공간을 재현했다. 제작진은 영화 내용 전부를 사전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파악한 후 실제 촬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아폴로13, 인셉션, 아마겟돈 등 다양한 영화가 무중력 상태를 소재로 활용했다. 이 가운데 아폴로13은 무중력 비행기를 이용해 가장 정확한 무중력 상태를 촬영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외의 영화는 대규모 비용과 고도의 촬영 기법에 부담을 느껴 대부분 지상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이 때문에 관객이 느끼는 무중력 상태의 실감도가 상대적으로 미약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래비티 제작진이 새로운 촬영 기술을 개발하면서 스튜디오에서 실제와 흡사한 무중력 상태를 촬영할 수 있게 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촬영 기술을 한 단계 올려놓은 그래비티는 과학자들에게도 (무중력 상태) 사실성을 인정받았다”며 “첫 12분을 한 컷에 담은 것은 감독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비티도 다른 영화처럼 옥에 티 장면이 등장한다.
허블 우주 망원경과 국제우주정거장은 각각 지상에서 350마일, 250마일 떨어져 있지만 영화 속에서는 같은 선상에 위치했다. 주인공 머리카락도 무중력 영향을 받지 않고 너무 단정(?)하다. 인공위성은 통상 지구 상공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돈다. 하지만 위성 잔해는 이와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 주인공과 충돌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일부 모순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와 우주 비행사, 유명 감독들이 찬사를 보냈다”며 “그래비티는 현실성을 높일 수 있는 영화 촬영 기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