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 TV홈쇼핑 이용 중소벤처업계 평가다. TV홈쇼핑은 뚫기도 힘들고 뚫어도 수익이 보장되지 않지만 그만큼 효과가 큰 곳이 없다.
벤처업계 한 관계자는 “TV홈쇼핑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 곳이 많다 보니 많은 기업이 TV홈쇼핑만 바라본다”며 “부당한 대우를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받아들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공정거래위가 잡아낸 TV홈쇼핑업계 불공정행위는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정도로 다양하다. ‘방송계약서 미교부 또는 지연교부’ 사례는 6개사 공히 나타났다. 적게는 132곳에서부터 많게는 300곳 이상 협력사(공급업체)에 미교부 또는 지연교부를 했다. 사실상 업계 관행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취지는 계약내용에 없는 불리한 거래조건을 설정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TV홈쇼핑업체는 ‘악의적인 것은 아니고 관행이었다’고 항변하지만 취지를 고려한다면 분명히 없앴어야 했다. 적지 않는 TV홈쇼핑 이용 중소벤처기업은 “계약내용이 바뀌곤 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관행 때문이었다.
4개사가 적발된 ‘판매촉진비 부당 전가’도 대표적으로 없어져야 할 행위다. 이른바 ‘싫으면 말라’는 갑질의 전형이다. 사전약정 체결 없이 판매촉진 비용을 전가한 사례도 이번에 확인됐다.
경영정보 요구도 마찬가지다. TV홈쇼핑 업체는 이메일, 카카오톡, 구두문의 등 은밀한 방법으로 경영정보를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경영정보를 이용해 불이익을 받은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구를 받는 중소벤처기업 입장에서는 마치 감사를 받는 듯한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경영정보 요구는 검찰 고발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어서 TV홈쇼핑 업체는 관련 해명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수료 수취방법 변경, 모바일 주문 유도와 같은 꼼수도 문제다. TV홈쇼핑 업체는 수수료 수취방법 변경으로 자사가 일방적인 이득을 본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공정위는 판매 부진에 따른 위험을 납품업자에 대부분 전가하는 전형적 불공정 거래라고 판단했다.
이번 제재에 TV홈쇼핑업계는 대체로 수긍하는 모습이다. 문제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일부 업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곳도 있다. 당초 고발조치는 물론이고 100억원 이상 과징금을 부과받는 업체가 나올 것이라는 소문 때문이다.
오는 6월에는 공영홈쇼핑도 탄생한다. T커머스업체도 등장한다. 제품을 납품하는 협력사에는 그만큼 기회가 늘어나는 셈이다. 정부는 홈쇼핑업계의 ‘갑질’을 막기 위해 그간 많은 규제를 해왔다. 공영홈쇼핑까지 만들었다. ‘갑질’이 이어진다면 사업권 회수 등의 더욱 강력한 규제조치도 필요하다. 그래야 유통질서와 그에 의지하는 중소기업 경제가 살아난다.
정부도 앞으로 조사를 이어간다. 불공정행위 감시 강화로 비정상적인 거래관행을 없애겠다는 의지다. 지난 2월 출범한 ‘홈쇼핑 정상화 추진 정부합동 특별 전담팀’ 가동을 본격화한다. 연내 TV홈쇼핑 불공정행위 심사지침(가칭)도 만든다. 백화점·대형마트에 이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TV홈쇼핑업계의 스타트업·중소벤처 시너지 효과는 매우 크다. 공기청정기를 만드는 이길순 에어비타 사장은 “TV홈쇼핑은 우리 시장을 열어줬다. 그들이 없었다면 어떤 소비자가 생소한 우리 제품을 샀겠느냐”고 말했다.
김영수 벤처기업협회 본부장은 “TV홈쇼핑은 정부 인허가를 받는 곳으로 그나름 역할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며 “제재를 계기로 홈쇼핑업계와 중소벤처가 더욱 상생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준배·유선일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