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의 영원한 숙제 중 하나는 ‘경제문제’다. 청년실업, 인구고령화, 연금개혁 등 거의 모든 문제 대부분이 결국 경제적 문제로 귀결된다. 돈이 많으면, 예산만 확보할 수 있다면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지만 거꾸로 확보하지 못한다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마련하기 어렵다.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한강의 기적’이라 할 만큼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해 경제개발 초기인 1960, 197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국제적 위상도 달라졌다.
생산과 수출품목 또한 신발, 장난감 등에서 IT제품, 자동차 등 보다 첨단화되고 기술적 완성도가 필요한 산업으로 변화했다. 특히 수출비중이 매우 큰 국가로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해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수출 1위 품목은 ‘전기전자제품’으로 수출 금액이 1억3800만달러에 달했고 2위는 자동차(7300만달러), 3위는 기계·컴퓨터(6300만달러)다.
1위 수출액이 2위와 3위를 합친 것과 비슷하고 3위 품목에 컴퓨터가 포함된 것을 감안하면 ‘전기전자제품’ 수출이 우리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기전자제품은 다양한 위험 요소 때문에 ‘전기용품안전인증제도’라는 하나의 규제 장치 하에 관리되고 있다. 국가에서 제품이 판매되기 전에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대부분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제도다.
각 국가에서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무역기술장벽’ 역할도 동시에 수행한다.
각국 정부는 국가시험인증기관을 지정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시험인증기관 역할은 명확하다. 제품 안정성을 사전 확인해 소비자에게 안전한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첫째요, 외국제품의 무분별한 수입에 대해 철저한 검증으로 국내시장을 보호하는 것이 둘째라 할 것이다. 하지만 전기전자제품 수출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인증기관은 추가적인 역할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수출대상국가의 기술 장벽 해소로 제조업체 수출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많은 수출제조업체들은 외국의 글로벌 시험인증기관을 통해 수출을 위한 ‘시험성적서 및 인증서’를 취득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고가의 인증비용이 소요되고 기술유출 위험성 등을 가지고 있어 결국 수출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우려가 높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시험인증제도를 단순한 ‘규제’ 정도로 인식한 나머지 시험인증산업이 가지고 있는 산업적 가치와 소비자 보호, 자국시장 보호와 같은 중요한 기능을 간과해온 측면이 있다.
이로 인해 국내 시험인증기관의 경우 전기전자 분야의 높은 제조업과 연구개발(R&D) 역량 수준에 걸맞은 시험인증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이유로 국내 제조업체의 외국기관 의존도는 여전히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해 지난해 1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시험인증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의결했다. 2017년도까지 국내시험인증기관 경쟁력을 선진국 평균 대비 87%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현재 전기전자 분야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국제표준을 연구하고 기술 장벽을 해소해 국제무역을 촉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국제기구 IEC에서는 국제공인시험인증기관 제도 IECEE CB 스킴(Scheme)을 운영하고 관련 국제규격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이 제도에 따라 공인된 국제공인시험인증기관에서 발행한 국제공인성적서는 원칙적으로 전 세계 57개국 회원국에서 통용될 수 있어 수출주도 국가 시험인증기관에서는 반드시 해당 자격을 취득할 필요가 있다.
이제 국가 시험인증기관이 가야 할 길은 보다 명확해졌다. 소비자 안전을 확보하고 국내 시장을 수입으로부터 보호하며 제조업체 수출경쟁력 향상을 위해 ‘기술 장벽’을 해소하는 데 일조해야 한다. R&D와도 별개의 과정이 아닌 최종 완성단계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시험인증을 국가 중요 핵심 산업으로 인식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제 국가와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할 때다. 아직은 글로벌 시험인증기관의 역량에 다소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 제조업이 이루었듯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시험인증기관도 글로벌 기관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양승인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인증산업본부장 siyang@ktc.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