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기 상황을 놓고 정부와 시장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는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 등 자산시장이 활기를 찾으며 실물부문으로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한국은행을 비롯해 국책연구소와 기업, 민간 경제연구소 등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금융기관들까지 올해 한국경제에 대한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9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4%에서 3.1%로 낮춘 것을 기점으로 국내외 경제기관들이 예외없이 전망치를 하향조정했다.
경제단체들이 내놓는 경기전망 조사에서 기업의 경기전망도 하락세가 다소 완화됐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이런 가운데 산업연구원은 지난 13일 한국경제의 일본형 장기부진 가능성을 제기하며 2010년대 후반 2%대, 2020년대 1% 성장 전망치를 언급했다.
그럴듯한 포장이 아니라 현 경제상황을 직시하고 이에 맞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와 시장 ‘엇갈린 경제전망’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는 최근 발표에서 경기 회복세를 언급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1일 월례 경제브리핑에서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 등 자산시장 활력이 실물부문으로 확산하면서 경기 회복세가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8일 이어진 기획재정부의 ‘최근 경제동향’ 발표에서도 일시적 요인으로 주춤했던 산업생산이 반등하는 등 완만하게 개선되는 모습이라고 현재 경제상황을 진단했다.
이런 가운데 통계청이 13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조사결과에 따르면 제조업 부문 일자리가 32개월 연속 증가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수준(443만3000명)까지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를 두고 ‘성장 없는 고용의 미스터리’라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 한국은행은 지난 9일 ‘2015년 경제전망(수정)’ 발표에서 경제성장률을 3.1%로 0.3%P 하향 조정했다. 한은은 하향 조정 배경을 작년 4분기 성장률이 당초 예상치(0.4%)보다 낮은 0.3%에 그치면서 출발선 자체를 재조정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소비부진을 그 요인으로는 지목했다.
김승현 대신경제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주가가 강세를 보이지만 실제 경제지표나 기업실적은 별다른 변화가 없고 현재 주가 상승 흐름과 괴리되는 측면이 강하다”며 “정부도 지난달 기준금리 인하 이후 특별한 정책적 대응이 없어 증시와 실물경기는 따로 갈 확률이 높다”고 전망했다.
◇기업 전망 ‘불안’…착시효과 걷어내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는 100을 기록했다. 2분기 연속 상승에 기준치(100)을 채웠지만 여전히 전반적인 소비심리 회복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대한상의 유통산업팀 관계자는 “유커 특수와 온라인쇼핑 실적호전으로 소매유통경기가 바닥을 치고 반등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이를 소비심리 회복으로 확대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진단했다.
대한상의 ‘2015년 2분기 기업경기전망(BSI) 조사’에서도 전망지수가 97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2분기 대비 14P 상승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기준치(100)를 밑돌아 아직까지 체감경기 개선보다 악화를 예상하는 기업이 많았다. 특히 대기업(99)보다는 중소기업(96), 수출기업(105)보다는 내수기업(95)의 전망이 어두웠다.
일부 대기업 호조를 활약으로 유지되는 각종 지표를 국가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전문가 시각이 힘을 얻는 이유다.
한 경제전문가는 “대부분 기업이 서서히 시들어가는 경기에 시름만 늘어나는 걸 모른체 빚으로 인위적인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4월 중소기업경기전망지수(SBHI)는 91.6을 기록해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3월 91.3으로 전월(82.1)보다 큰 폭으로 개선됐으나 한 달 만에 다시 하락 반전했다.
이런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던 수출마저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3월 수출은 469억88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2% 감소했다. 수입도 전년 동월대비 15.3% 줄어든 385억9600만달러로 집계됐다. 특히 수입이 크게 감소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가 등 원자재 가격하락이라는 특수성이 존재하지만 수입감소는 기업 투자나 내수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기불황이 심해질 수 있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효근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최근 주가상승이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주가 상승이) 실물경제로 이어지는 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며 “주가를 올린 동력과 정책당국의 경기회복 의지가 합쳐져야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본식 장기불황의 위협…근본 대책 마련해야
산업연구원은 인구변화에 따른 성장둔화와 가계부채 문제를 우리 경제 최대 위험요인으로 분석하며, 일본형 장기부진 우려를 제기했다.
일본과 20년 내외 시차를 두고 생산연령인구와 총인구 감소세 전환(각각 2017년, 2030년)이 예상됨에 따라 상당폭 성장둔화가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특히 가계부채 문제를 내수부진을 크게 심화시킬 수 있는 위험요인으로 거론했다.
이 같은 요인을 감안하면 2010년 후반 2%대, 2020년 1%대로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연구원은 최근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소비성향이 하락세로 돌아서는 등 가계부채 문제가 이미 소비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인구 감소와 가계부채 조정 동시진행에 따른 악영향 증폭과 세계경제 부진 지속 등 대외환경과 수출 추이도 부진 가능성에 일조할 것으로 내다봤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통화정책은 점점 위력도 떨어지고 부작용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높다”며 “장기적인 경기회복을 위해 구조조정, 구조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서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회복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우선”이라고 말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