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대기업이 주도했던 우리나라 전기차 시장에 중소기업이 잇따라 도전장을 냈다. 전기차는 가솔린·디젤을 사용하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 동력을 쓰기 때문에 개발이나 제조를 위한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전기차는 배터리와 전기모터 위주로 동력구조가 단순화돼 전력·전자부품 모듈화가 가능하다. 일반 자동차처럼 복잡한 엔지니어링 기술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도 스타트업·중소기업 참여가 활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업계는 중소기업 전기차 시장 진출을 반기면서도 우려 시선도 함께 보낸다. 시장 참여자 확대와 경쟁 확산은 긍정적이지만 생명을 실은 교통수단인 만큼 신중한 시장검증이 필요하다.
◇유·불리를 함께 안고 뛰는 중소기업
모든 제조업이 그렇지만 중소기업이라 가능한 것도 많지만 중소기업이기에 어려운 것도 많은 법이다.
중소기업이 전기차 시장 진입에 있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강점은 빠른 결정으로 차를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전력·전자부품 모듈화로 동력구조가 비교적 단순화됐기 때문이다. 크게 모터·인버터·배터리로 구성된 전기차 구조는 이차전지에 저장된 전력을 인버터 등 전력 변환장치를 거쳐 모터에 전달해 차량을 구동한다. 내연기관 차량과 비해 부품수도 40% 정도에 불과하다. 복잡한 엔지니어링 기술이 줄어들면서 소량 생산에도 유리하다. 이 때문에 내연기관 대비 대규모 시설이나 막대한 개발·제조 인력 확보로 인한 투자비가 많이 들지 않는다. 전 세계 선풍적 인기를 끈 테슬라모터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중소기업이라는 기업 구조적 장점도 있다. 대기업에 비해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한발 빠른 제품 개발과 타 업종과의 기술협업이 유리하다. 이 때문에 유럽과 미국 중소기업이 기존 완성차 업체가 쉽게 접근하지 못한 마이크로·경차 등 세컨드카 형태 전기차를 주로 내놓는다.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틈새시장 공략이 가능한 것이다.
반면에 중소기업 전기차 시장 참여에 있어 나타날 수 있는 단점은 바로 시장 검증이다. 생명을 싣고 달리는 교통수단인 만큼 시장이 인정하는 안정성 확보가 관건이다. 이런 이유에서 중소기업은 대기업 완성차 업체와 달리, 소형이나 경차 형태의 중저속 전기차로 시장에 진입하는 사례가 많다. 시장 검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다.
기업 구조적 특성상 어려움도 존재한다. 부족한 자금력 탓에 시장진입에 필요한 브랜딩이나 마케팅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정한 인증이나 형식승인에 필요한 비용이나 테스트 장비 확보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불리한 환경도 존재한다. 우리나라 도로법규나 각종 지원 제도가 대규모 제작사 위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시장진입을 위해 중·저속 전기차를 개발하고 있지만 국가 도로법상 달릴 수 있는 도로 제한이 여전히 많다. 전기차 보조금 지원이나 각종 연구개발(R&D) 사업은 대부분 대기업에 돌아갔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기존 대기업과 달리 배터리나 전력제어뿐 아니라 차별화에 필요한 정보통신기술(ICT)을 가진 타 업종 업체와 쉽게 협력할 수 있는 유연성이 가장 큰 강점”이라며 “개발생산부터 시장에 필요한 각종 인증 등 중소기업 시장진입에 필요한 정부 지원책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국내외 전기차 수요 증가…도전을 부른다
중소기업이 글로벌 완성차 대기업 대비 다소 밀리는 경쟁력에도 전기차 시장에 도전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친환경차에 대한 선호인식 덕이 크다.
최근 전 세계 저유가 상황 지속에도 전기차 시장은 크게 성장했다. 미국 인사이드EVs에 따르면 지난해 1월 1만4512대였던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매월 꾸준히 늘어 지난해 12월 3만7511대까지 뛰어올랐다. 11개월 만에 2.6배나 판매량이 급증한 셈이다. 여기엔 각국 친환경 정책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자동차 사용자의 인식변화가 주효했다.
우리 정부도 오는 2020년까지 20만대 전기차를 보급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를 위해 2020년까지 전기차 보조금제도를 포함해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관용차량 25%를 전기차로 교체하도록 했다. 정부가 나서 민간이 투자하기 어려운 충전인프라 구축에도 나섰다.
정부는 2020년 이 같은 포지티브 지원을 종료하고 네거티브 정책으로 전환해 전기차산업 활성화에 나설 방침이다. 2020년부터 저탄소차협력금제도를 통해 기존 내연기관 차량에 페널티를 부과한 돈으로 전기차 보조금을 지원한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을 위한 내수시장 확보는 물론이고 해외시장 진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소기업을 위한 시장 환경조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소기업이 시장에 진출하기엔 각종 환경적 요인이 여전히 부담스럽다.
전기차 특성을 고려한 관련 법규를 손질하고 순수전기차 제작사의 정비업 등록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새로운 전기차 출시에 따른 전기차 연비 규정을 신설하는 것도 시급하다. 일반 승용전기차뿐 아니라 화물전기차나 전기버스, 마이크로 전기차 등으로 모델이 다양화됨에 따라 에너지 소비효율 측정 기준 등도 세분화시켜야 한다.
이와 함께 소규모 전기차 제작사를 위한 안전기준평가를 완화하면서 시험비용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도 중소기업 시장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요인이 될 것이다. 연간 500대미만만 생산하는 중소기업 사업자에 소량인증제도를 적용해 각종 인증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한 전기차 중소기업 대표는 “전기차 운영에 따른 연료비 절감 장점뿐 아니라 친환경 인식이 높아지면서 국내외 전기차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차량 인증이나 생산 등 각종 설비 규정을 완화해 중소기업 시장 참여를 활성하는 정부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표】중소기업의 완성 전기차 시장 참여에 따른 SWOT 분석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