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년 전만 해도 “스마트그리드(Smart Grid)를 아느냐”고 물으면 ‘열에 열’ 사람은 모른다고 대답할 정도로 스마트그리드는 생경했다. 이들에게 스마트그리드를 알리기 위해서는 우선 생산부터 소비에 이르는 전기의 한 ‘생애’를 설명해야만 한다. 발전소에서 전기가 생산되면 먼 곳에 있는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수백 ‘킬로볼트(㎸)’로 압력을 높여서 보내야 하고, 이 송전 과정에서 여러 단계를 거치며 ‘압’이 하향 조정되면서 집에서는 220V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장황한 설명을 할 수밖에 없다. 뒤이어 “그럼 스마트그리드란 말이죠”라며 이제 ‘본론’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쯤 되면 듣는 사람도, 말하는 나도 이미 진이 다 빠져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를 닦으며 출근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아침 일이다. 어떻게 하면 보다 간단명료하고 설득력 있게 스마트그리드를 설명할지를 고민하다가 입을 헹구려고 무심코 수도꼭지를 돌렸다. 세면대에 쏟아지는 물을 보면서 전력계통을 상하수도 흐름에 빗대 설명한, 언젠가 들었던 한 강연 내용이 떠올랐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니 고지대에 저장할 곳을 만들어 상 하수도를 거쳐 흘러가게 해서 집에서는 수도꼭지만 돌리면 콸콸 나온다. 이 같은 물의 ‘일생’이, 볼트(V)와 암페어(A)가 난무하는 전기보다야 이해하기 훨씬 싶지 않을까. 시야를 좀 더 좁혀서 보니 물과 전기가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공기처럼 없으면 큰일이 나지만 평소 너무나 당연한 듯 쓰는 그것. 그래서 쓰고 난 뒤 내야 하는 요금(charge)을 세금(tax)으로 착각해서 너무나 당연한 듯 ‘전기세’ ‘수도세’라고 부르는 그것. 또 있다. 한정된 자원이지만 부족함을 모르고 사용하는 그것. 그래서 아무리 절약하자고 얘기해도 실제로 아끼기는 쉽지가 않은 점 역시 똑같다. 오죽하면 ‘OO를 물 쓰듯 한다’는 말도 있을까. ‘전기 쓰듯 한다’는 말은 없는 것을 보면 전기보다는 물을 더 부담 없이 쓰는 것 같기도 하다. 또 예측이 쉽지 않아 수급 균형을 위해서는 효율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공통점은, 인위적으로 생산하는 전기보다 자연현상에 의해 생성되는 물이 오히려 더 까다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전기와 물은 늘 부족했지만 그 부족함을 실감 못하며 살아가는 우리 일상은 그동안 한전이나 K-water가 자원 관리를 얼마나 잘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편안함’을 원하는 것은 인간 본성이다. 부족하니 아끼자고 해봐야 맛을 들인 ‘편리’를 쉽게 포기 못한다. 공급을 무한정 늘릴 수도 없다. 1년 중 특정 계절, 아니 하루 중 전력사용량이 가장 많은 몇 시간 때문에 평소에는 쓰지도 않을 발전소를 더 건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기존 전력망에 ICT를 더해 소비자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한정된 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기술, 바로 스마트그리드가 점진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물도 마찬가지다. 좁은 국토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이 사는 우리나라는 ‘1인당 수자원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강우량이 많으면 홍수가 발생하고, 강우량이 적으면 가뭄이 반복된다. 물을 저장할 공간이 크고 많으면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무한정 댐을 건설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로 넘치는 물을 잘 저장해뒀다가 부족할 때 공급하는, 스마트그리드와 같이 수자원 역시 똑똑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전기는 총생산량 중 많게는 40%가 송전과정에서 허공으로 날아가며, 물은 매년 총량 중 31%가 손도 쓰지 못한 채 홍수가 돼 바다로 흘러가 버린다고 한다. 물 역시 무의미하게 소진되지 않도록, 수자원 계통을 ICT에 접목한 ‘스마트 워터 그리드’(Smart Water Grid) 솔루션이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미래 기술을 이용해 자원 낭비를 막고 새로운 산업으로서 국가경제 성장 동력으로도 삼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세계 스마트그리드 시장은 매년 28%씩 성장해 오는 2017년 1252억달러 규모에 이르고, 세계 물 산업은 2018년 기준 무려 6890억달러 시장으로 확대될 전망이라고 한다. ‘물의 올림픽’으로 평가 받는 ‘세계 물 포럼’이 지난주 대구에서 폐막했다. 스마트그리드와 스마트 워터 그리드 기술은 소중한 자원을 아껴 쓰는 것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을 새로운 글로벌 산업 리더로 견인할 동력이 될 수 있다. 물 포럼 슬로건 ‘Water for our Future’와 같이 물과 전기로 우리의 밝은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구자균 한국스마트그리드협회장(LS산전 회장) jakyun.koo@l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