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연구가 그렇지만, 암은 연구 자체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결과물을 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기다려주는 지혜가 필요하지요.”
박경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전체구조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연구소 평가는 짧은 시간에 좋은 결과를 내야하는 시스템”이라며 “큰 성과를 내기 위해선 기다려줄 수 있는 연구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 책임은 최근 피로물질로 알려진 젖산의 새로운 기능을 밝혀 관심을 끌었다.
간암 전문가로 불리는 박 책임은 지난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캠퍼스(UCSD) 박사후연구원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암만을 연구해왔다. 암을 일으키고, 억제하는 유전자를 찾는 연구로 15년을 보낸 셈이다.
서울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UCSD에서 4년간 미생물 운동성과 관련한 분자기전을 연구했다. 암세포 전이가 일어나는 세포이동성에 관한 연구다.
생명연에 들어가서도 암만 바라봤다. 최근엔 암에서 젖산이 많이 생산된다는 것과 저산소 조건에서 젖산이 많다는 데서 새로운 기전을 발견했다. 젖산이 피로물질로서 역할 뿐만 아니라 세포성장과 혈관생성을 조절하는 신호물질로 작용한다는 것을 밝혔다.
“사실 발암성 단백질 ‘NDRG3’에 대해 몰랐습니다. 젖산과 결합해 세포를 활성화한다는 것을 이 연구를 통해 새로 알게 된 것입니다.”
양전자단층촬영(PET)으로 암을 진단할 때는 분해가 안 되는 방사선을 띠는 포도당이 특정부위에 축적되는지 여부를 따진다. 암세포가 포도당을 지나치게 흡수한다는 것은 노벨상을 받은 독일 생화학자 오토 하인리히 바르부르크가 밝혔다. 박 박사는 그 이후 단계를 새로 밝힌 것이다.
“실용화까지 갈 길은 멉니다. 이 연구는 암 및 염증질환 치료와 관련한 새로운 개념과 검증된 치료 표적을 제시하는 기초연구로 이해하면 됩니다. 향후 치료제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임상단계 시도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입니다.”
다국적 기업인 화이자와 공동연구를 제안했던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NDRG3를 연구하고 싶었으나, 최종 과제는 암대사 유전자인 ‘PKM2’로 결정 났다. 자연스레 NDRG3 연구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PKM2를 연구함으로써 되레 암 대사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돼 젖산과의 관련성을 보다 일찍 검토하게 됐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석사를 마치고 LG종합기술원에 들어갔습니다. 연구원으로 생활하다보니,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더 이상 발전이 없겠다 싶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죠.”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