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미국 동북부와 캐나다 일부에서 발생한 정전 사태(블랙아웃)는 5500여만명을 사흘간 암흑 속에 가뒀다. 당시 공항과 대중교통 등 기반시설 운행은 중단됐고 공단과 상업시설도 문을 닫았다. 이 기간 집계된 경제적 피해 규모는 6조8000억원에 달했다.
블랙아웃 원인은 미국 오하이오 주 인근 발전기와 송전 선로 산발적 고장이었다. 사고 지역 전력망을 파악해 신속히 차단해야 할 ‘전력계통 운영시스템(EMS)’이 제 때 작동하지 못해 대규모 정전사태로 이어졌다.
EMS는 발전소와 변전소, 송전시설과 선로별 전력 계통의 운영 현황을 24시간 종합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전력중앙관제센터는 EMS로 전체 전력망 이상 여부를 파악하고, 전력 수요 급증 등 비상 시 대응 방안을 찾아 전력 공급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EMS를 국가 전력계통을 움직이는 두뇌라 부르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EMS를 1979년부터 10년 간격으로 해외에서 도입해 사용해왔다. 외산 사용으로 유지보수 비용은 계속 늘어났고, 스마트그리드 시대에 대한 선도적 대응도 어려웠다.
한국전기연구원(KERI)은 정부 ‘전력IT 중대형 전략과제’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375억원을 투입, 한국형 차세대 EMS(K-EMS) 개발을 추진했다. 이 과제에는 한국전력거래소, LS산전, 한전KDN, 바이텍정보통신 등이 참여했다.
개발된 K-EMS는 지난해 10월 한국전력거래소가 실제 전력계통에 성공적으로 적용하면서 국산화에 이은 상용화까지 완료됐다.
개발 과정에서 KERI는 EMS 핵심인 SCADA, 계통해석, DTS(관제사 훈련용 시뮬레이터)를 국내 기술로 상용화했고, EMS 실시간 및 최적화 기반 발전응용프로그램도 자체 개발했다.
K-EMS는 안정적인 전력공급은 물론이고 경제성까지 확보할 수 있는 여러 기능을 갖추고 있다. 발전기 및 송전계통의 자동발전제어, 수요 예측과 예비력 감시, 발전비용 계산은 물론이고 최적 조류계산, 발전기 기동정지계획 수립 등이 가능하다.
K-EMS 개발 구축으로 우리나라는 국가 전력계통을 자체 기술로 통합 제어하는 세계 5번째 국가가 됐다. 400억원 수입대체 효과에 연 30억원 이상 유지보수 비용 절감 등 430억원 경제적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EMS 국산화는 국가 전력계통 안정적 운영과 더불어 기존 하드웨어 중심 전력분야 연구개발을 SW 중심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이정호 KERI 스마트전력망연구센터장은 “다가올 전력수요 1억㎾ 시대에 대비할 수 있고, 자체 전력계통 운영 기술을 축적해 해외시장 진출도 가능하다”며 “지속적인 EMS 연계 기술 개발로 국가전력망 운영제어 고도화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창원=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