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신뢰성은 곧 기업 경쟁력

[이슈분석]신뢰성은 곧 기업 경쟁력

#자동차 브레이크 페달에 들어가는 1000원짜리 부품을 만드는 A사는 장기 사용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로 파산하고 말았다. 장기 사용 시 접점에 문제가 있어 브레이크를 밟아도 정지등이 들어오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 것. 자동차회사는 1차 협력사(B사)와 2차 협력사(A사)에 각각 60억원과 20억원 규모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연 이윤이 50억원인 B사는 부도를 면했지만 이 분야 사업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이윤 규모가 수억원에 불과한 A사는 문을 닫았다.

제품 ‘신뢰성’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신뢰성은 제품·부품을 장기간 사용해도 초기 성능을 유지하며 사용할 수 있는지를 정량적 수치로 표현한 것. 최초 품질이 장기간 유지되는 특성으로 품질과는 다른 의미다. 연필깎이를 예로 들자. 연필 표면이 매끄럽고 부드럽게 깎였으면 연필깎이 품질이 우수하다고 말한다. 만약 1년 뒤에도 처음처럼 매끄럽고 부드럽게 깎였다면 신뢰성이 우수한 것이다.

신뢰성은 ‘피로파괴’와도 일맥상통한다. 철도사고가 대표적이다. KTX는 연평균 46만㎞ 운행으로 2009년에는 월평균 고장이 1.92건에서 2011년에는 5.2건으로 급증했다.

품질이 현재 성능 평가라면 신뢰성은 미래 성능 평가다. 데이비드 가빈 하버드대 교수는 품질의 8가지 범주 가운데 하나로 신뢰성을 꼽으며 “품질이 현재를 의미한다면 신뢰성은 미래 품질”이라고 설명했다.

신뢰성이 중요한 것은 고객 기대수명과 관련이 깊다. 고객은 무의식적으로 사용제품에 장기간 기대수명을 갖고 있다. 과거 같으면 문제가 발생하면 제품 수명이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

신뢰성 결함 유형은 소재와 부품 두 가지로 나뉜다. 제품과 기술적 특성으로 인해 신뢰성 평가대상과 방법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재 신뢰성은 사용 환경 영향으로 시간경과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다. 제품 표면의 변색과 부식, 열화 등이 사례다. 부품 신뢰성은 다양한 사용환경 속 작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장이나 불량이다. 마모, 크랙(깨짐), 파손 등이 예다.

최근 신뢰성은 ‘기업 경쟁력’으로 표현된다. 소재부품 고부가가치화와 시장점유율 확대 등을 위한 제조업의 핵심요소로도 불린다. 실제로 제품 신뢰성을 확보한 기업 부가가치는 매우 높다. 정부 신뢰성기술 확산사업 성과를 분석한 결과, 지원을 받기 전 기업의 사업 마진율은 12.1%였으나 사업 수행 후에는 18.7%로 급증했다. 마진이 무려 6.6%포인트나 급증한 셈이다. 신뢰성 확보가 수익성 증가로 이어진 셈이다.

고객 신뢰 확보는 시장점유율 증가로 나타났다. 신뢰성기술확산사업 지원을 받은 기업의 평균 거래처 수는 사업 수행 전 국내 10.7개사, 해외 3개사에서 수행 후에는 국내 17.4개사, 해외 7.8개사로 늘었다. 해외는 두 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선진국에서 제품 신뢰성을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신뢰성기술 확산사업 성과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고전압 PTC히터를 만드는 우리산업은 인지도와 신뢰성 문제로 해외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 지원으로 설계와 소재를 변경해 해외 수요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의 성능과 수명을 확보했다. 크라이슬러·GM 등 세계적 기업이 요구하는 객관적 데이터를 제시한 것. 이전까지 수출이 없던 A사는 2012년 GM·크라이슬러를 뚫었고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35%로 늘렸다.

엔진 마운트를 만드는 에나인더스트리는 외국 자동차 고객사가 엔진 재배치 후 내열 내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납품 중단 위기에 처한 것. 회사는 저하원인을 분석하고 핵심 소재와 형상 설계 개선 그리고 열차단막을 적용해 신뢰성을 확보했다. 에나인더스트리는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341억원을 수출하게 됐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됐다.

신뢰성 확보로 수출 증대 사례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신뢰성은 낮다. 우리나라 품질과 신뢰성 경쟁력은 2012년 기준 89.6점(이하 미국 100점 기준)이다. 일본(99.8점)과 비교해 10점 이상 떨어진다. 2012년 기술경쟁력 격차는 우리나라가 92.1점, 일본이 95.7점으로 3.6점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품질·신뢰성 경쟁력 비교에서는 중국이 70.8점으로 많은 차이를 보였다. 중국 품질·신뢰성 경쟁력 수준은 2007년 57.1점에서 크게 개선 추세다. 우리나라는 2007년 87.2점이었으며 2010년 92.7점으로 개선됐다가 다시 2012년 내려갔다. 기술 수준은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품질·신뢰성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개선 속도가 느린 셈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쟁심화로 단순 성능 개선을 넘어 ‘무결점’에 도전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신뢰성은 기업 지속성장을 가능케 하는 경쟁력으로 더욱 큰 힘을 발휘할 것이란 예상이다.

김홍석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소재부품단장은 “수요기업이 믿고 쓸 수 있는 소재부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신뢰성 확보 노력이 중요하다”며 “그동안 소재부품 신뢰성 확보로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지속적인 투자와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