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의 계절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프로야구가 최고 인기다. 프로야구 붐을 타려는 IT업계의 움직임은 따로 열거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국내에도 야구게임이 등장한 것이 이미 20여년 전(1990년대 중반 사내스포츠라는 업체가 내놓은 한국프로야구 PC게임이 있었다), 이제는 스트리밍 중계가 대세가 되고 스포츠채널에도 IT 광고들이 도배되다시피했다.
야구계도 IT를 이용한 마케팅이나 붐업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특히 IT기업을 모회사로 하는 와이번즈나 위즈, 트윈스 등은 야구장을 첨단 모바일 시설로 채워 넣었다. ‘시대의 흐름’인 IT와 ‘시대의 대표 콘텐츠’인 야구가 맞물려 돌아가는 그림이다.
그런데 고작 수년 전에 야구가 IT업계를 ‘적’으로 간주했다면 믿겠는가. 지난 2009년 봄이었다. 당시 KBO의 마케팅 페이퍼에서 칼럼 요청이 들어왔다. 과거 야구기자였고 당시 곰TV에 재직했던 필자의 경력을 들어, ‘야구와 게임이 적인가’라는 질문에 의견을 달라는 것.
당시 ‘마구마구’라는 온라인게임을 내놓은 넷마블이 프로야구 타이틀 스폰서로 참가하며, 프로야구계 일각에서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실제 있었다는 게 배경이었다. 게임은 유저를 실내에만 묶어둬 결과적으로 입장 수익을 떨어뜨리고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을 빼앗아갈 거라는 게 일부 스포츠계의 시각이었다.
이에 반박한 논리는 ‘콘텐츠와 플랫폼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레너드 코페트의 명저 ‘The New Thinking Fan`s Guide to Baseball’에도 기술돼 있듯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프로스포츠의 천국’ 미국에서도 프로스포츠가 더 큰 사랑을 받고 본격적으로 수익사업이 된 계기는 바로 1970년대 후반 문을 연 스포츠전문 케이블 채널 ‘ESPN’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팬들은 더 자주 프로스포츠를 접하게 됐고, 스포츠계는 천문학적인 중계권 수익까지 챙기게 됐다고 적혀있다.
이런 취지로 게임 역시 팬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야구를 접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데다 야구계의 주요 수익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신 야구계는 이들 플랫폼에서 올리는 수익에 대한 정당한 배분(중계권, 초상권 등)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도 주장했다(이 글이 나간 직후 프로야구선수협에서 게임사에 초상권을 문제삼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유추할 뻔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에는 꽤 뜨거운 논란거리였던 게 사실이었다. 이처럼 콘텐츠와 플랫폼을 혼동해서 혹은 상호이해가 부족해서 생긴 오해로 인해 개인적으로도 사업에 어려움을 겪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콘텐츠 사업자만이 아니라, 플랫폼 사업자인 IT업계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예를 들자면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가 프로야구 중계에 매달리다보니, 자신들이 프로야구 전문가인 척하는 모양새라고나 할까. 반대로 연예기획사에서 콘텐츠를 직접 서비스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같이 콘텐츠와 플랫폼의 적극적인 융합도 본격화되고 있다.
이제는 과거처럼 콘텐츠와 플랫폼을 구분하는 게 별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네이버에 검색어 순위가 등장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본격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하지 않은가.
콘텐츠와 플랫폼을 경쟁 관계나 무관하다고 보는 건 옛날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콘텐츠나 플랫폼 한가지에만 매달리는 반쪽 전문가 보다는, 두가지에 대한 이해가 겸비된 사람들이 돋보일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스페셜리스트’는 현대에 각광받은 인물형이었지만, 앞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근대의 아이콘인 ‘르네상스맨’이 부활하지 않을까 싶다.
필자소개/ 전동희
한성컴퓨터 전무(cancell@naver.com). 신문기자로 시작해 주간지, 웹진, 방송, 인터넷, 게임사업까지 거친 ‘TFT 전문 저니맨(journey man)’. CJ 미디어 게임채널, 그래텍(곰TV) 등에서 근무했다. SF소설과 록음악, 스포츠 마니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