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탄소자원화, 자원과 기술의 경쟁

탄소는 자연계에서 생명현상과 직접 연관돼 있으며 에너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원소다. 인류가 대량으로 사용한 탄소원은 목재에 이어 석탄이다. 석탄은 이미 기원전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 가공에 사용됐다. 석탄이 본격적으로 인류문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다. 상업적 채굴이 시작되고 증기기관의 동력원으로 석탄은 수송과 산업에 활발하게 이용됐다. 그러나 19세기에 중동에서 유전이 발견되면서 화석연료는 석탄에서 석유로 급격히 전환됐다. 20세기 들어와 에너지원뿐 아니라 화학원료로 석유 수요가 증가했고 섬유, 플라스틱 등 생활용품과 산업기반 제품을 공급하게 됐다. 이는 탄소기반 물질과 재료의 공급체계가 확립된 것을 의미한다. 오랜 기간 지구상에 묻혀 있던 탄소 물질들이 기술적 수요에 의해 자원이 된 것이다.

[기고]탄소자원화, 자원과 기술의 경쟁

최근 원유가 하락에 대한 원인분석은 다양하다. 이 중 최대 석유생산국인 사우디가 공급과잉 시장이 형성된 상황에서도 생산량을 감축하지 않고 있는 것은 셰일가스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원유의 영향력 회복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우디가 증산을 고집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내수 시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우디 원유 내수는 연평균 6%의 성장을 보이고 있고, 원유 생산량의 27%가 내수용이다. 이는 원유가 아닌 다른 제품 형태로 수출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10%의 원유가 화학제품으로 전환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유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량은 감소하는 반면에 화학 원료로 역할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독일이 일시적으로 전체 소비전력의 50%를 재생에너지에서 생산한 것이 좋은 예다. 에너지원과 탄소원의 분리가 이미 시작됐음을 알리는 징후는 다양하다.

탈석유 탄소자원화 시작은 석탄 활용에 있다. 석탄은 또 다른 화석 원료라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탄소자원은 아니지만 합성가스나 일산화탄소를 거쳐 화학원료로 전환될 수 있다. 지속가능한 탄소원인 바이오매스는 당분이나 전분을 주로 포함하는 곡물계, 셀룰로오스를 주로 포함하는 농산 폐기물, 임산자원, 해양바이오매스가 있다. 야생균주를 이용한 전통적인 미생물공정 외에 유전공학적으로 다양한 화학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최근에는 솔라 리파이너리라는 개념으로 새로운 화학 제품군 개발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이 밖에도 탄소자원을 확보하는 노력은 이산화탄소 활용에서도 가능하다. 화석연료를 연소한 후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생물학적, 화학적 촉매 공정으로 유기산이나 친환경 고분자 소재로 전환해 유용한 화학 원료로 이용하는 기술은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역사적으로 풍부한 자원이 일시적으로 경제를 부흥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효과는 지역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제한적이다. 궁극적으로 자원의 부족을 극복하려는 선진 기술을 보유한 국가가 다시 경제를 이끌어간다. 그 이유는 자원의 속성이 기술에 의해 소모될 때 자원 가치도 올라가지만 신기술 개발에 의해 대체 자원이 확보되면 기존 자원 가치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기술이 자원을 대체하는 효과인 셈이다. 이 같은 면에서 기술과 자원은 끝없이 경쟁하면서 신산업을 창출해 간다.

탄소를 둘러싼 에너지와 화학 산업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탄소기반 에너지 문제는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해결되고 있어 에너지 자원과 탄소자원을 분리해 개발하고 활용하는 것은 화학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결국 저유가 시대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탄소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지에 달려 있다.

문승현 광주과학기술원 총장 shmoon@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