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겨울을 보내고 나면 우리 몸은 나른해진다.
예부터 이를 춘곤증이라고 불렀다. 봄이 되면 피곤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도 같이 가지고 있었다. 바로 봄이면 산과 들에 지천으로 나는 봄나물이 그 해결책이다. 봄이 되면 겨울 동안 떨어진 면역력을 회복하고 춘곤증을 이기기 위해 제철나물인 봄나물을 먹어야 한다. 특히 봄에 새로 나는 어린 싹 대부분은 약한 쓴맛을 갖는다. 약한 쓴맛은 열을 내리고, 나른해지면서 무거운 것을 치료하며, 입맛을 돋우는 작용을 한다.
나물은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을 조미해 무친 반찬 모두를 통칭한다. 우리 일상의 부식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음식의 하나다. 나물 재료는 모든 채소와 버섯, 나무의 새순 등이 쓰인다.
우리 조상이 즐겨 노래한 ‘농가월령가’의 정월, 이월, 삼월에는 나물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많다.
예로부터 채소는 우리 민족의 생명줄이었다. 우리가 먹을 것이 없는 상태를 ‘기근’이 들었다고 표현하는데 ‘기’는 곡식이 여물지 않아서 생기는 굶주림을 말하고 ‘근’은 채소가 자라지 않아서 생기는 굶주림을 일컬었다. 즉 곡물 못지않게 채소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먹을거리가 넘쳐나 영양과잉이 문제가 되는 현대 사회에서 기근 해결로서가 아니라 비만 해결책으로 나물은 최고 음식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산과 들에 지천으로 나는 나물 중에서 가장 으뜸이 두릅이다. 두릅은 두릅나무에 달리는 새순을 말하는데, 그 독특한 향이 일품이다. 두릅은 땅두릅과 나무두릅이 있다. 땅두릅은 4∼5월에 돋아나는 새순을 땅을 파서 잘라낸 것이고, 나무두릅은 나무에 달리는 새순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두릅은 10여 종에 이르는데 봄철의 어린순을 먹는다. 한문으로는 나무의 머리 채소라는 뜻으로 ‘목두채’라 한다. 자연산 두릅은 4~5월에 잠깐 동안 먹을 수 있는데, 요즘은 비닐하우스에서 인공 재배를 하므로 이른 봄부터 나온다.
두릅은 비교적 단백질이 많으며, 섬유질과 칼슘, 철분, 비타민B1, 비타민B2, 비타민C 등이 풍부하다. 특히 쌉쌀한 맛을 내는 사포닌 성분이 혈액순환을 돕고, 혈당을 내리고 혈중지질을 낮추어 준다. 두릅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어 영양적으로 우수할 뿐 아니라 간에 쌓인 독소를 풀어내는 효능이 있고 피와 정신을 맑게 한다. 냉이, 달래, 쑥, 원추리 등 숱한 봄나물이 있지만 두릅은 사포닌 성분 때문에 최고로 치기도 한다.
껍질에서부터 순, 잎, 뿌리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두릅은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방법을 가장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산적, 잡채, 김치 등 다양한 요리에도 향긋하게 잘 어울린다. 두릅은 어리고 연한 것을 골라 껍질째 연한 소금물에 삶아 찬물에 헹궈 건진다. 이때 두릅의 쓴맛은 몸에 좋은 성분이지만 거슬린다면 끓는 물에 데쳐서 찬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내면 된다. 삶은 두릅을 상온에 오래 두면 색깔이 변하므로 주의한다. 오래 보관하고 싶으면 소금에 절이거나 얼리면 된다.
조선말기 유명 조리서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도 두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생두릅을 물러지지 않게 잠깐 삶아 약에 감초 쓰듯 어슷하게 썰어 놓고 소금과 깨를 뿌리고 기름을 흥건하도록 쳐서 주무르면 풋나물 중에 극상등이요,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많이 먹으면 설사가 나므로 조금만 먹는 것이 좋다’고 했다. 두릅은 실제로 약한 독성분이 있을 수 있으므로 데쳐서 헹구어 먹는 것이 좋다.
이 봄, 우리는 다른 호사를 누리지 못하더라도 나물 중의 제왕, 두릅으로 향긋한 봄 향기를 느끼는 호사만은 놓치지 말자.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