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기업 공룡 탄생을 저지하는 데 각국 기업과 정부 간 치열한 눈치보기와 손익계산이 작용했다. 중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 일환으로 자국 장비 기업 육성 기회를 노린 것이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와 도쿄일렉트론(TEL) 합병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중국 정부는 어플라이드와 텔 합병을 승인하는 조건으로 증착장비(CVD) 원천기술을 중국에 이전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층증착(ALD) 같은 최신 증착 기술이 아닌 CVD 초기 단계의 원천 기술이지만 기업이 원천기술을 이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당초 어플라이드와 텔은 증착장비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한 뒤 매각하는 방안, 특정 기술 부문 증착 장비를 국내외 기업에 매각하는 방안 등을 검토했다.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자진 시정 방안을 국가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독보적 1위 장비기업 탄생을 달가워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싱가포르와 독일만 합병 승인을 했을 뿐 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경쟁이 치열한 한국, 대만, 미국, 일본, 중국은 1년 6개월이 넘도록 경쟁 제한 효과를 분석하며 뚜렷한 결과를 내지 않았다.
세계적 장비 경쟁사가 포진한 미국은 물론이고 잠재적 대형 수요국인 중국 정부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반도체 생산 전 분야에 걸쳐 장기적으로 장비를 국산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계 유수 장비 기업 원천 기술을 요구하는 강수를 뒀다.
업계는 각국이 양사 합병 승인을 불허하거나 ‘수용하기 힘든’ 조건을 내건 조건부 승인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예측했다. 최대한 취할 수 있는 이익을 가져가기 위해서다.
국내에서는 거대 장비기업에 대한 종속성을 우려했지만 업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렸다. 글로벌 공룡 장비사에 대한 종속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략적으로 국내 장비기업을 육성할 것이라는 분석과 실질적으로 국내 장비 기업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교차했다.
한 관계자는 “중국이 D램 등 메모리를 자체 개발·생산하기 위해 자국의 장비 기업을 육성하려는 전략을 볼 수 있었다”며 “중국을 둘러싼 협력과 견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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