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희의 雜說(2)] 피곤한 어벤저스](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15/05/07/article_07144322034439.png)
어린이들로 시끌벅적한 극장에서 어벤저스를 봤다.
마블의 어벤저스 시리즈는 십수 년 전부터 원작 그래픽 노블을 쌓아두고 즐겨봤던 터. 2008년 영화 ‘아이언맨’에 닉 퓨리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캡틴 아메리카’나 ‘토르’ 그리고 어벤저스의 영화화를 예상했었다.
아이언맨까지 합치면 시리즈는 어느덧 5번째. 2018년에 나온다는 차기작에서는 이제껏 처럼 CG와 액션으로 무장한 블록버스터보다 어벤저스의 분열과 주요 캐릭터들이 고뇌 등을 그린 비극 ‘시빌 워(Civil War)’를 기대한다. 물론 제작사가 잘 팔리는 시리즈를 조기에 끝날 생각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처럼 현재의 어벤저스에서 피로감을 심하게 느낀다. 영화의 내용만이 아니라 주변 분위기까지 더해졌다. 영화가 국내 개봉관의 대다수를 점령한 것은 물론 어린이날까지 맞물려 토이나 어패럴, 게임 등 관련 상품이 쭉 깔렸다. 여기에 영화 속 서울의 모습에 대한 비아냥과 최신 국산 휴대폰에 등장할 아이언맨의 모습 등 한국적인 피로감도 있다.
사업자의 입장에서 잘 나가는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벤저스 풍년`은 우리 산업의 전반적인 분위기와도 맥을 같이 한다면 과장일까.
현재 몸담은 게임 산업도 그런 모양새다.
기술적인 부분과 플랫폼 특성을 빼고 게임 그 자체만을 들여다보면, 어벤저스와 같은 쏠림 현상은 여전하다.
온라인 시절부터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 잡은 RPG가 그렇다. 심하게 말하자면 게임의 세계관과 분위기는 `디아블로`나 `반지의 제왕`으로 대표되는 판타지에, 게임 시스템과 비즈니스 모델은 차별화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에 무협이니 삼국지니, 스킨만 바꿔놓은 느낌이다.
모바일에서 그렇다. 디바이스의 고사양화에 따라 이제는 기존의 온라인게임 시장이 모바일에서 재현되는 정도. 끊임없는 노가다를 통한 레벨업과 현질을 유도하는 아이템 수집. 여기에 중국 웹게임에서 성행했던 BM까지 더해졌다.
새로운 것이 나오기 어렵거나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데에 대해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문화적인 편협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어벤저스만 주구장천 틀어대는 한국 극장가와 같다고 할까.
게다가 기본이나 철학 문제까지 파고 들어가면 더욱 심각하다. RPG의 기본이 되는 세계관은 판타지다. 그중에서도 게임은 전사나 마법사가 등장하는 ‘검마(劍魔) 소설’ 구조인데, 과연 검마소설의 효시라는 로버트 에드워드 하워드의 ‘야만인 코난(1930)’-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나온 그 영화의 원작이다-이나 어쉴러 르귄의 ‘어스시(Earthsea)’ 시리즈를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왜 게임 캐릭터의 `전직`이 이뤄지는지 알고 있을까. 혹시 우리 RPG의 세계관은 반지의 제왕 영화가 전부 아닐까.
기본을 알고 하는 것과 이미지만 차용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하다. 몇년전 블리자드의 온라인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나왔을 때 한국 게임개발자들이 느낀 위화감은 여기에 기인했을 것이 틀림없다.
게임계를 낮춰보거나 시장구조에 대해 토를 달 생각은 없다. 이는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로 지적돼왔다. 업계 탓만 하기도 뭐하다. 연휴 기간 중 가장 많은 수익을 낸 모바일 게임은 역시 온라인식 RPG였다. 게다가 게임계가 이런 성공을 발판 삼아 TV광고를 뿌려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게임계는 이제 주요 광고주다. 당분간 게임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줄어들 게 뻔하니까.
그런데도 어벤저스를 보고 나올 때처럼 씁쓸한 것은 왜일까. 악당만 바꿔 때려부수는 어벤저스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필자소개/ 전동희
게임펍(game pub) 전무(cancell@naver.com). 신문기자로 시작해 주간지, 웹진, 방송, 인터넷, 게임사업까지 거친 ‘TFT 전문 저니맨(journey man)’. CJ 미디어 게임채널, 그래텍(곰TV) 등에서 근무했다. SF소설과 록음악, 스포츠 마니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