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파이어 잉곳 업계, ‘치킨게임’서 밀려…신시장 개척만이 `살길`

애플워치에 사파이어 글라스가 첫 적용되면서 원재료인 사파이어 잉곳 업계에 수혜가 예상되지만 국내 업계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전망이다. 지난해부터 해외 경쟁업체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중국 업체는 정부 후광으로 사파이어 잉곳 생산력을 높이고 있고 일본 기업은 엔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러시아 업체도 환율이 떨어져 국내 업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원가가 낮아졌다. 업계는 원가 혁신과 신규 시장 창출을 위한 특화사업 발굴 등으로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표 사파이어 잉곳 제조업체가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파이어테크놀로지는 지난해 매출 517억원, 영업손실 26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에도 275억원 영업손실을 냈다.

사파이어 잉곳·웨이퍼 사업을 시작한 일진디스플레이 역시 지난해 영업이익 227억원으로 전년 대비 62% 크게 감소했다. 한솔테크닉스는 LED 분야 실적 저조로 지난해 당기순손실 17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초 매물로 나온 LG실트론는 여전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내 사파이어 잉곳 업체 누적 적자가 심화된데다 잉곳 주요 수요처인 발광다이오드(LED) 산업도 기대만큼 성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정체된 상황인데 가격은 폭락하면서 수익성 악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일부 국내 업체는 원가도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 치닫자 생산을 중단했다.

최근 애플이 첫 웨어러블 기기 ‘애플워치’에 사파이어 글라스를 적용하면서 ‘비LED’ 분야 신규 수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중국 업체가 잠재 성장이 높다고 판단, 이 시장 진출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는 기술력이 부족해 사파이어 가공사업에만 집중했지만 최근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사파이어 잉곳 생산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있다. 애플워치 역시 중국 업체를 중심으로 사파이어 글라스 공급 체계가 구성됐다.

경쟁 관계였던 일본·러시아 업체는 엔화·루블화 환율 급락으로 높은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면서 빠르게 세를 확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워치에 이어 사파이어 글라스 채택 분야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높은 가격’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특히 중국이 설비가동률을 높여 가격 하락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업체는 ‘치킨게임’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국내 업체는 원가 절감을 위한 공정 변화나 품질 차별화 등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파이어테크놀로지는 지난해 말 원가 개선을 위해 신공정도입에 나섰다. DK아즈텍은 주력 사업인 사파이어 잉곳 제조 대신 자체 기술로 개발한 잉곳 성장로 장비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IT업계 외 사파이어 글라스 수요가 예상되는 의료용, 군사용 등 고부가 특화 시장에 주력하거나 6인치 이상 대구경 생산에 집중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며 “중국과 맞대결하는 것보단 틈새시장 공략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