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정의 육아경영/교육칼럼] (3)생각이 자라는 기적의 ‘질문노트’

[김연정의 육아경영/교육칼럼] (3)생각이 자라는 기적의 ‘질문노트’

요즘 아이들은 너무 바쁘다. 학교 끝나고 바로 이어서 학원, 학원 끝나면 바로 이어서 숙제, 숙제 끝내고 자고 일어나면 다시 학교……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이 스케줄 속에서 책을 읽어내는 아이들을 보면 오히려 신기해 보인다. 그런데도 일부 엄마들은 “우리 얘가 책을 안 읽는다”, “아무리 읽게 하려 해도 책을 안 좋아한다”며 아이를 판단하곤 한다.

최근 초등학교에서는 책읽기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가히 ‘독서운동’이라 칭할 만 하다. 취지가 참 좋다. 하지만, 과연 이 현상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독서’를 너무 양적인 측면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물론, 다독도 중요하다. 하지만, 본질적인 부분을 먼저 생각해보자.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학원에서는 학교에서 진행되는 독서퀴즈대회에서 수상할 수 있도록 과외를 해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 그렇게 학원에서 과외를 받은 아이들이 교내 독서퀴즈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한다. 그래서 엄마들은 책을 읽히기 위해 또 학원을 보내야 하는 웃지못할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독서가 이처럼 지식을 받아들이는 도구, 혹은 시험을 위한 도구로서 사용된다면 비판적 독서가 불가능해진다. 책 내용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도 있다는 생각, 책 속의 주장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 혹은 ‘왜 이런 관점으로 썼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와 같은 독자의 관점이 더해 지지 않으면 텍스트는 모조리 ‘요약하고 외워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때문에 국어과목이 아닌 `독서` 자체가 시험이나 퀴즈대회 등과 연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책은 ‘생각의 재료’다. ‘책을 30분 읽는다, 1시간 읽는다’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책읽기 30분’이라고 정하는 것은 생각을 딱 30분만 하고 끝내라는 말과 같다. 책에 푹 빠져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럴 여유가 없으니 자연스레 책을 멀리 하게 되는 거다. 평소 아이 스스로가 ‘읽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책 좀 읽어라”하지 말고, 책 읽을 ‘시간’을 주자! 결국 ‘시간적 백지(잉여시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시간적 백지에 대해서는 <난 육아를 회사에서 배웠다>의 8장 [창의력] 편에서 언급한 바 있다. 3가지 백지(물리적 백지, 시간적 백지, 관념적 백지)에 생각의 재료인 ‘책’이 더해 지고, 이에 대화가 곱해지면 핵융합처럼 생각과 생각 간의 시너지가 일어난다.

△사진설명: 3가지 백지에 생각의 재료 ‘책’이 더해지고 여기에 대화까지 곱해지면 ‘생각의 핵융합 시너지’가 일어난다.
△사진설명: 3가지 백지에 생각의 재료 ‘책’이 더해지고 여기에 대화까지 곱해지면 ‘생각의 핵융합 시너지’가 일어난다.

자의든 타의든, 요즘 아이들은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책을 좋아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대부분 독서록을 쓴다. 학교마다 형식은 다르지만 저학년의 경우 3~4줄 정도로 간단한 줄거리나 느낌을 쓰도록 구성되어 있는 독서기록장을 사용한다. 독서를 습관화하는 측면에서 매우 좋은 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독서를 양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어느날 필자의 딸아이에게 “책을 읽고 궁금한 점이 있을 때 질문을 쓰라”고 해 보았는데, 효과가 있었다. 우연히 필통 속에서 꼬깃꼬깃 접힌 색종이를 발견했는데 버릴까 하다가 펼쳐 보았다. 다름 아닌 ‘질문 쪽지’였다. 빈 색종이를 이용해 질문을 써 놓았던 것이다. 질문쓰기가 재미있었는지 그날 이후 아이는 종종 빈종이에 질문을 써 놓곤 했다.

△사진설명: 초등 2학년 아이의 필통 속에서 발견한 꼬깃꼬깃 질문 쪽지-‘줄일까 늘릴까 이발사의 결투’를 읽고 색종이에 써 놓은 질문들이다. ©최수안
△사진설명: 초등 2학년 아이의 필통 속에서 발견한 꼬깃꼬깃 질문 쪽지-‘줄일까 늘릴까 이발사의 결투’를 읽고 색종이에 써 놓은 질문들이다. ©최수안

독서기록장을 질문기록장으로 바꾸어 보면 아이들 독서습관이 어떻게 달라질까? 줄거리와 느낌을 쓰는 기록장이 아니라, 읽은 책에 대해 궁금한 점을 3-5가지로 질문해 보는 기록장이라면……? 그리고, 학교에서도 독서록을 많이 쓰는 것 보다 좋은 질문을 많이 하는 아이들에게 상을 준다면…?

요약하는 독서기록장이 아닌 생각하는 질문기록장을 쓰게 한다면, 아이들은 분명 책을 읽으며 전 보다 더 많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냥 독서록을 쓰기 위해 숙제처럼 책을 읽기 보다는 그 질문기록장에 더 좋은 질문을 쓰기 위해 책을 좀 더 깊이 있게 읽을 것이며,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읽게 될 것이다. 독서기록장은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전학년에 걸쳐 쓰는 것이니, 내 아이에게 맞는 간단한 ‘질문노트’를 마련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그냥 백지 노트면 충분하다. 겉 표지에는 이렇게 쓰자.

‘OO이의 생각이 자라는 기적의 질문노트’ 라고.

생각할 여유가 주어진다면 ‘책 읽기’는 그 자체로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책 읽기가 즐거워지는 순간, 책은 ‘생각의 재료’로써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독서’를 숙제로 받아들이게 해서는 안 된다. 책이 생각의 재료가 될 수 있도록 맘껏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대화할 수 있게 해주자.

(다음 칼럼에서는 독서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하브루타식 독서법’에 대해 소개합니다.)

필자 소개 : 김연정 / 광고대행사 코래드를 거쳐 마이크로소프트코리아(Microsoft Korea) 마케팅담당 부장, 아디다스코리아(adidas Korea) 브랜드커뮤니케이션 팀장, 야후오버추어코리아(Yahoo! Overture Korea) TA팀장 등 주로 외국계 글로벌기업에서 마케팅 경력을 쌓았다. 현재 트위터코리아(Twitter Korea) 이사로 재직 중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성공’을 지향하며 일과 육아의 병행을 위한 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난 육아를 회사에서 배웠다, 매일경제신문사>가 있다. @TheNol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