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한 기술 개발이 요구되는 R&D사업에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거나 이른바 ‘패스트트랙’을 적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중장기 국가 R&D사업의 고질적 병목구간을 해소해 시장 대응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는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가재정지원이 300억원을 넘는 사업에 적용되는 제도다. 대형 투자사업 경제성과 파급효과를 사전에 분석해 국가 예산 낭비를 막는 안전장치다.
예타 과정에서 문제점도 노출됐다. R&D에 건설공사 등 일반 사업과 비슷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핵심 사업이 예타 과정에서 탈락하거나 보류됐다. 정부가 중장기 R&D 전략을 수립해도 주요 사업이 예타를 통과하지 못해 알맹이가 빠진 채 진행해야 했다.
현행 예타 제도는 R&D사업 추진까지 길게는 3년이 소요된다. 어렵사리 예타를 통과해도 이미 해외 경쟁국에 뒤처진 상태에서 기술 개발에 착수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됐다.
정부는 신속한 추진이 필요한 R&D사업에 예타 면제를 제도화하고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기존 사업 구조조정으로 확보한 재원으로 예타 면제와 패스트트랙 사업을 시범 운영한다. 3년간 사업 실적을 점검한 후 계속 여부를 판단한다. 갑작스러운 제도 변화로 인한 혼선을 막기 위해 징검다리식으로 예타 면제 제도화를 추진한다.
합리적인 예타 면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향후 과제다. 정부는 예타 면제를 제도화한다는 방침은 정했지만 아직 가이드라인과 도입 일정은 정하지 않았다.
R&D는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특성상 정량적 기준 마련이 어렵다. 예타 면제 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차단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고종안 기획재정부 경제재정성과 과장은 “관계부처와 연구계 의견을 수렴해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R&D 성과 평가·관리체계도 개선한다. SCI 논문건수가 아닌 연구 질적인 측면을 중점 평가한다. 목표를 조기달성했거나 어려울 때 사업을 중지하는 ‘조기중단(early exit)’, 목표수정을 인정하는 ‘무빙 타깃(moving target)’ 제도로 도전적 연구를 촉진한다.
공과대학 평가에 기존 교육·연구실적·학생지도 외에 산학협력 실적 지표를 추가한다. 대학 R&D사업 평가지표에도 기업부설연구소 유치, 중소기업 기술애로센터 설치 등 산학협력 실적을 반영한다. 대학의 기업지원 기능 강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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