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수요자 중심 맞춤형 환경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김용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김용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뜨거운 커피를 들고 밖을 걸어 다니다 보면 컵 뚜껑의 구멍 사이로 커피가 튀어버리는 일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뚜껑 구멍에 끼워 넣는 플라스틱 막대기가 스플래시 스틱(splash stick)이다. 이 아이디어는 글로벌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가 자사 온라인 커뮤니티인 MSI(My Starbucks Idea)에 올라온 고객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결과다. 실제 커피 수요자인 고객과 소통의 장을 넓히고 고객이 제시한 개선점을 받아들여 고객 만족을 극대화한 사례를 보며,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글로벌 커피브랜드의 저력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고객 중심 시각의 중요성은 기술개발 분야에서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7월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서 확정된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정부 연구개발시스템 혁신방안’은 과학기술개발 분야에서도 고객의 수요 파악이 핵심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기존에는 공급자 중심주의 시각에서 기술 자체의 발전에만 목표를 뒀다면, 이제는 ‘기술이 누구에게 쓰일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다. 공급자 중심의 R&D(Research & Development) 대신, 수요자 맞춤형 R&SD(Research & Solution Development) 시대다.

그렇다면 기술 성격에 따라 수요자도 세분화해야 한다. 범국민 대상 기술이라면 국민에게 질문을 해야 하고, 수출을 위한 기술이라면 산업체, 의식제고를 위한 기술이라면 언론사 등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일례로 해외 수출을 위한 환경 기술개발을 기획할 때, 가장 먼저 의견을 물어야 할 곳은 기술 전문가가 아니라 실제 해외 수출현장에서 뛰고 있는 산업계여야 할 것이다. 물론 기술 전문가, 정책 입안자 등 관계자들 역시 중요한 고객이고 그들의 의견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질문의 가장 첫 순서는 바로 그 기술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환경기술은 어떤가? 환경기술은 개인이 먹고 마시는 기본 의식주 문제부터 미래 세대의 지속가능한 발전까지 모두 포함하는 국민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는 기술이다. 이와 같은 국민과 환경기술의 근접성을 고려했을 때, 무엇보다 국민의 수요를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환경기술개발이 필요하다.

일례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는 ‘환경난제대응 기술개발사업’을 기획하면서 과제 선정 과정에서 최근 언론에 게재된 총 55만건의 환경 관련기사를 바탕으로 17개를 도출해 냈다. 국민이 가장 필요로 하는 환경기술개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국민의 여론과 생각을 가장 먼저 분석한 것이다.

직접적인 국민의 여론분석과 수요 파악뿐만 아니라 환경기술을 실제로 사용하는 지자체의 수요도 반영하고 있다. 지자체 의견을 반영해 과제를 기획하고 그 과제에 필요한 테스트베드도 마련해 실제로 환경 개선이 필요한 지역에 기술 설비를 설치·운영하고 적정 운영기술도 확보하고 있다.

지자체 수요를 적극 반영해 진행하고 있는 사업으로 충청남도 금산군 공공하수처리장 내에 테스트베드 설치사업을 들 수 있다. 이 사업을 통해 겨울철 질소, 인 제거 효율 향상과 에너지 절감형 하수처리설비 실증을 추진하고 있다. 지자체 수요에 충실한 과제다 보니 기술개발 성과도 우수하고 지자체의 환경기초시설 개선에서 큰 몫을 하고 있다.

근고지영(根固枝榮)이라는 말이 있다. 뿌리가 굳건해야 가지가 무성하다는 뜻이다. 환경기술이라는 가지가 무성하게 뻗어가기 위해서는, 그 기술의 최종 수혜자에 대한 이해가 튼튼히 뿌리내려야 할 것이다. 모든 기술은 결국 수요자가 없으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바닥 다지기 작업이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이유다.

김용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yjk@keit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