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15> 정운찬 전 국무총리(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동반성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합리적 이타주의(利他主義)를 실천해 서로 잘살자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동반성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합리적 이타주의(利他主義)를 실천해 서로 잘살자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동반성장이 우리 시대의 화두(話頭)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을 5월 6일 오후 3시 서울 관악로 연구소에서 만났다.

연구소로 인터뷰를 요청하자 5분도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로 낯선 번호의 전화가 왔다. “정운찬이라고 합니다.” 정 이사장 전화였다. 인터뷰 요지를 설명하자 바로 승낙했다. 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군더더기가 없다. 그는 소탈하고 실용적이었다.

정 이사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다. 서울대 총장과 이명박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국무총리 재임 시 동반성장이란 시대의 화두를 우리에게 던졌다. 총리 퇴임 후 정부 요청으로 초대 동반성장위원장으로 일했고, 이후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는 정계로 가거나 아니면 사회원로(元老)로 조용히 지내는 전직 총리와는 달리 국가과제인 동반성장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자본론과 거시경제를 비롯한 경제학 서적으로 사무실 사방 책장이 꽉 차 있었다. 인터뷰는 회의용 탁자에서 마주 앉아 한 시간여 진행했다. 그는 매일 오전 10시 사무실에 나와 오후 6시께 퇴근한다.

“동반성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합리적 이타주의(利他主義)를 실천해 서로 잘살자는 개념이다. 동반성장은 양극화 해소와 일자리 창출 열쇠다.”

-동반성장을 화두로 던진 이유가 궁금하다.

▲국무총리 시절인 2010년 봄에 중견기업을 경영하는 지인이 찾아와 “이민을 가야겠다”고 하소연했다. 이유를 묻자 “대기업 횡포가 너무 심해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중견기업 CEO가 이민 갈 정도면 중소기업은 어떻겠나. 즉시 실상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결과를 보고받고 경악했다. 구두(口頭) 주문과 가격 후려치기, 어음 결제, 기술탈취가 많았다. 나는 곧바로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만나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그렇게 해 그해 12월 13일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했다. 동반성장 아이디어는 내가 냈다. 지인 중에 일본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인이 있다. 간혹 알 수 없는 목돈을 일본 대기업이 보내주기에 알아보니 정부보조금이 나오면 그 돈을 거래업체와 나눈다고 했다. 독일에서는 원자재 값이 오르면 즉각 부품가격에 반영해 하도급업체 납품가를 인상해 준다고 한다. 우리도 이런 걸 배워야 한다.

-동반성장에 대한 오해가 많은데.

▲동반성장은 노무현정부 상생협력과 이명박정부 공생발전과 취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이 성장해 서로 잘살자는 것이다. 동반성장은 우리 미덕이다. 과거 조상들은 두레나 향약을 통해 서로 돕고 살았다. 경주 최부잣집이 좋은 본보기다.

-초과이익배분제를 도입한 취지는.

▲동반성장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제도다. 위원회 첫 작품인데 대기업을 포함해 곳곳에서 반발이 거셌다. 일부에서는 나를 ‘빨갱이’라고 했다. 대기업 임원인 제자가 그룹 회장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기에 “내 얼굴이 빨갱이처럼 보이냐”고 물었다. 초과이익배분제는 대기업 것을 빼앗아 중소기업에 주자는 게 아니다. 대기업이 목표보다 이익을 더 내면 임직원에게 연말에 상여금을 주는 것처럼 협력업체와 이익 일부를 나눠 상생하자는 의미다. 중소기업이 강해지면 대기업이 덕을 본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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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은 외국기업에 시장을 내 준다는 지적이 있다.

▲사실과 다르다. 1979년부터 2006년까지 중소기업고유업종 제도가 있었다. 그 제도는 재벌기업을 개혁하겠다고 출범한 노무현정부에서 폐지됐다. 내가 그걸 중소기업적합업종이란 제도로 부활시켰다. 관련 조합 신청을 받아 230여개 중 82개를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기간은 3년이고 한 번 더 연장할 수 있게 했다. LED시장에서 네덜란드 필립스가 국내 시장을 독차지한다는 주장이 있기에 직접 알아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언론플레이였다. 이 제도를 없애면 양극화는 더 심해진다.

-정부 발주의 중소기업 중심화는 왜 도입했나.

▲정부 공공발주는 과거 대기업이 대부분 낙찰을 받아 중소기업에 하도급을 줬다. 대기업은 중간 이익만 챙겼다. 정부 발주 80%를 중소기업에 주도록 바꿨다. 중소기업체에서 고맙다는 전화가 많이 왔다.

-동반성장이 안 되는 이유가 뭔가.

▲이해관계 때문이다. 대기업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되나. 대기업은 동반성장이 싫고, 중소기업은 드러내 놓고 말을 못한다. 정치권이나 언론도 대기업 눈치를 본다.

-어떻게 해야 하나.

▲대통령의 확고한 철학과 실천의지가 필요하다. 나는 정부의 대기업 관련 부처를 대기업청으로,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바꿨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대기업 총수의 인식 전환도 필수다. 대기업이 혜택을 베풀라는 게 아니다. 이익이 나면 그 일부를 중소기업에 나눠주라는 것이다. 기업의 인사제도도 고쳐야 한다. 지금은 단기성과를 내야 승진한다. 성과를 내려고 협력업체에 가격 후려치기를 한다. 단기실적을 올린 사람이 승진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 교육과 연구개발(R&D)시스템도 혁신해야 한다. 지금 연구(R)는 없고 개발(D)만 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입장은.

▲경제민주화는 경제사회가 민주적으로 변화한다는 의미다. 규정을 공정하게 만들고 지키자는 것이다. 나는 동반성장이 경제민주화를 달성하는 데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본다.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했는데 이유는.

▲나는 교수 시절부터 행정부처 분산을 반대했다. 정부부처는 유기적인 조직이다. 나는 대통령께 세 번이나 국민투표를 건의했다.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향 주민들에게 매향노(賣鄕奴)라는 소리도 들었다. 지금도 반대 입장에 변화가 없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청소년에게 당부할 말씀은.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세상은 어둡다가 밝아진다. 그게 세상 이치다. 매순간 열심히 일하다 보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좌우명은.

▲스코필드 박사가 주신 교훈이다. 정직이 가장 경제적인 생활방식이다. 국력을 키워라. 비둘기의 자애로움으로 착한 사람을 대하고 나쁜 사람은 호랑이의 엄격함으로 대하라.

정 이사장은 화려한 경력과는 달리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태어나자 주역에 조예가 있는 마을 훈장이 사주를 보고 “운이 가득한 아이”라며 ‘운찬’이라 작명했다고 한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 속에서 자랐다. 공부를 잘해 경기중·경기고를 졸업했다. 초·중학교 시절 점심을 먹어본 적이 없다. 3·1운동 민족지도자 34인 가운데 한 명인 스코필드 박사가 정 이사장 중·고교 학비를 부담했다. 그가 경제학을 전공한 것도 스코필드 박사의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공부를 하라”는 조언에 따라서였다. 이후 평생의 업(業)이 됐다.

서울대는 동문회 장학금으로 졸업했다. 그는 조순 교수(부총리, 서울시장, 한국은행총재 역임) 추천으로 한국은행에 입행했다가 미국 유학길에 올라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컬럼비아대 교수로 재직했다.

조순 교수 권유로 귀국해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일했다. 그는 조순 교수로부터 균형과 중용, 조화를 배웠다고 한다.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총장이 됐다. 서울대 총장시절 동반성장의 하나로 지역균형선발제를 도입했고, 사상 처음 여성 교수를 학생처장과 연구처장에 임명했다.

“학생 구성비를 보니 100명 가운데 42명 출신지가 서울이고, 그 중 26명이 강남구 지역 학생이었다. 이러다간 서울대가 서울지방대학 혹은 강남대학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2년 1학기부터 전국 고교장 추천을 받아 전체 4000명 중 1000여명을 선발하고 나머지를 기존 입시전형으로 뽑았다. 대성공이었다. 서울대 입학고가 전국 600개에서 1000개로 늘었다.”

정 이사장은 소문난 야구예찬론자다. 그는 서울대 사화과학대 야구반 지도교수를 지냈다. 2012년 6월 1일 캐나다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야구경기에서 시구(始球)도 했다.

“스코필드 박사 추모공원 개막식에 참석하러 캐나다에 갔는데 마침 시구 요청이 왔다. 나로선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었다.” 그는 프리미엄 조선에 야구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좋아하는 야구팀과 선수는.

▲두산 베어스다. 선수는 안경현 SBS 해설위원이다. 그는 필요할 때 제 역할을 했다.

글에 대한 그의 열정은 기자들 못지않다. 정 이사장은 1980년 말부터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사회개혁에 관한 글을 언론에 기고했다. 그는 목요일자에 게재될 원고를 전(前) 주 토요일 초고를 작성한 후 가족이 읽게 해 주말에 손질했다. 월요일이 되면 학부생에게 원고를 다시 고쳐보라 했고, 화요일 대학원생에게 틀린 것 찾아보라고 하면서 완전한 원고를 만들었다.

-정치권에서 대권후보로 거론한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이 될 것인지보다는 무엇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동반성장 전도에 충실할 뿐이다.

동반성장 구현에 관한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올 때 그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을 나왔다. 굳이 사양해도 그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서 있었다. 부드럽지만 양심과 원칙에 순응하는 그의 강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