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희의 雜說(3)] 통신비 인하?

[전동희의 雜說(3)] 통신비 인하?

2000년대 초반이다. 우후죽순 생겨나던 IT업체들과 만날 당시였다. 개인적으로 하루에도 50여명의 관계자, 20여개의 업체들과 릴레이 미팅을 가질 정도였다. 당시에는 인터넷이라는 단어만 앞에 붙으면 뭐든지 다 성공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요즘 O2O(Online to Offline)이라고 표현되는 사업 행태도 사실 당시 업계 관계자들의 머릿속에서 다 그려졌던 그림의 연장으로 느껴질 정도로 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물론 십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이디어가 아닌 `상품`으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인프라나 소비자들의 태도 변화 등 여러 요소 때문이었으리라.

어쨌거나 당시 등장했던 사업체나 모델들의 하나같은 고민은 바로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기술이나 서비스로 돈을 벌겠냐는 것. 돈을 어떻게 벌지도 모르면서 서비스를 한다는 게 지금 들어도 정말 개념이 없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물론 당시에는 ‘묻지마 투자’가 이뤄지던 때이니 가능한 이야기였다.

이렇게 ‘개념도 없이’ 하루에도 수십개씩 쏟아지던 서비스 가운데 유독 빠르게 소비자들 사이에서 정착되고 돈까지 번 서비스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웹하드 모델이었다. 굳이 국내 최초가 어디라고 따질 것은 없지만, 초기에는 아이디스크니 팝폴더니 서너개의 서비스가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요즘 클라우드가 그렇듯 웹하드도 빠르게 소비자 사이를 파고 들었고, 그 결과로 웹하드 업체들은 늘어나는 서버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유료화 모델을 내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무엇으로 과금을 하는가’는 문제다.

당시에는 꽤나 신중한 논의가 이뤄졌다.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데이터 저장공간에 따라 요금을 차등부과하거나 ▶데이터 전송속도에 따라 무료와 프리미엄 서비스를 나눈다는 것 정도. 이 중 주목됐던 것은 바로 ‘속도’의 문제였다.

저장공간을 기준으로 요금을 부과하는 것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모델이다. 하지만 다운로드나 업로드 속도 차이로 돈을 더 쓰게 하겠다는 것은 분명히 신선한 시도였다(무료 서비스는 업/다운 속도가 10k 정도, 유료는 700k~1M 정도로 기억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 성공적인 결과를 거뒀다. 요즘 정보통신비 가계부담을 줄이겠다며 데이터 중심의 요금제 즉 통화나 문자를 공짜로 푸는 방안이 나오고, 정부에서는 휴대폰 단말기 가격을 낮추는 등 갖가지 선심성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 상당수가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통신비는 통화, 문자, 데이터, 단말기, 보조금 등이 어지럽게 맞물려 있다. 어지간히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진짜 할인 혜택이 있는 건지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다.

게다가 국민 모두에게 초고속 무선 인터넷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통신업체들의 입장이나 신기술 드라이브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와이파이에 접속할 수 있는 주부나 게임이나 스트리밍 서비스는 경험도 하지 못한 노년층이 왜 빛의 속도로 데이터 통신을 사용해야 하나. 통신비가 화두처럼 떠올라 연일 대서특필되고 정치인들까지 인하를 외치는 판이지만, 과거 웹하드 초기 당시 보다 고민이 없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소비자들이 요금제를 따로 공부하고 주변과 토론까지 하면서 비교하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새로운 요금제가 ‘도토리 4개’처럼 느껴진다면 과장일까. 통신비 논란이 일어나는 건 현명한 소비의 차원이 아니라 복잡한 공급 때문이라고 느껴진다. 소비자 통신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이통사의 말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있을까.

갤브레이스의 지적처럼 어쩌면 우리는 별 필요도 없는 고액의 서비스를 공급자의 애드립에 현혹돼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우리는 저공이 기르던 원숭이 취급을 받는 건 아닐까.

필자소개/ 전동희

게임펍(game pub) 전무(cancell@naver.com). 신문기자로 시작해 주간지, 웹진, 방송, 인터넷, 게임사업까지 거친 ‘TFT 전문 저니맨(journey man)’. CJ 미디어 게임채널, 그래텍(곰TV) 등에서 근무했다. SF소설과 록음악, 스포츠 마니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