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인터넷 이상원기자] 스티브 잡스 하면 애플, 애플하면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애플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잡스도 애플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이유는 매킨토시 프로젝트의 실적 저조 때문. 애플 이사회는 1985년 4월 11일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 부문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논의했고 결국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축출 당했다.
이 사례는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일화 중에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회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이사회는 이런 모습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소위 낮잡아 표현하는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실상을 어떨까.
김재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사외이사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그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국내 대표 100개 기업의 이사회 관련 자료를 조사한 결과 총 9101개의 안건 중 사외이사가 한 명이라도 반대한 경우(반대, 보류, 수정요구, 조건부 찬성 등을 모두 포함)는 33건(0.4%)에 불과했다.
또 사외이사가 안건에 반대한 기록이 있는 15개 기업 중 59명(9%)의 사외이사만이 3년간 한 번이라도 반대표를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어떤 안건에 대해서 반대표를 던졌을까. 이는 해외자원투자, 인사, 지배구조, 주식 등 이해상충의 가능성이 높고 언론에서 다루어졌던 사안들로 나타났다. 즉 언론에서 주목하고 있는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만 반대를 한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사외이사 중 CEO와 연고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구성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번 조사 결과 CEO와 지연, 학연 등의 연고관계가 있는 이들은 반대하는 경우가 훨씬 드문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663명의 사외이사 중 CEO와 같은 지역 출신인 경우는 7명(6%),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경우는 2명(3%)만이 한 번이라도 반대표를 행사했다. 이런 연줄이 없는 경우 각각 52명(10%), 57명(9%)이 반대표를 행사한 것과 비교하면 이들의 반대표 행사 비율은 매우 낮다.
더욱이 현 사외이사 구성에서 더 큰 문제는 반대를 한 경력이 있는 사외이사는 다음에 사외이사직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자산 2조원 이상 기업 중 지난 1년간 안건에 한 번이라도 반대한 사외이사는 그렇지 않은 사외이사에 비해 다음 해에 교체될 확률이 약 2배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지역 출신이 아니면서 한 번 이상 안건에 반대한 62명 중 18명(29%)이 다음 해에 교체된 반면, 같은 지역 출신이어도 반대를 한 12명은 교체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즉 사외이사 직위를 유지하게 위해서는 CEO와 연고가 있거나 반대표를 행사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서는 김 연구위원은 후보추천위원회를 사외이사로 구성하고 현행 단수후보 추천에서 복수후보 추천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보추천위원회를 사외이사로 구성하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CEO의 영향력은 상당 부분 배제되기 때문이다.
또한 복수후보 추천 제도가 도입되면 불합리한 추천 후보에 대해서 주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다만 복수후보 추천 제도의 경우 후보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과 소액주주들의 주주권 행사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정비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김 연구위원은 “사외이사 임기제한에 대한 재고와 CEO의 이사회 의장 겸직금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자신문인터넷 이상원기자 slle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