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를 믿고 전기버스 대량 생산체계까지 갖췄지만 버스 50대를 고스란히 재고로 떠안게 됐습니다.”
전기버스 사업부 매각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화이바 경영진이 털어놓은 하소연이다. 한국화이바는 지난 2009년 전기버스 사업에 의욕적으로 뛰어들었다가 변변하게 사업한번 벌이지 못하고 해당 사업부를 팔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중국 기업이 유력 인수자로 떠올라 아쉬움을 더한다.
회사는 유리섬유강화 플라스틱(FRP) 등 차량 외관재와 엔지니어링 기술까지 확보했다. 우리나라 도로환경에 맞는 저상버스나 배터리 자동교환형 시스템 등 독자적 전기버스 사업모델을 완성했다. 지금까지 정부나 여러 지자체 전기버스 시범·상용사업 대부분을 주도했고, 지난해 일본 미쓰비시에 전기버스를 수출하기도 했다.
기술력을 갖췄지만 시장은 열리지 않았다. 비극의 출발점은 지난 2009년 서울시와 맺은 전기버스 사업 양해각서(MOU)였다. 당시 서울시는 한국화이바 등을 앞세워 2010년부터 10년간 3500대 전기버스 보급계획을 발표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서울시를 믿고 양산설비에 투자해 전기버스 수십대를 생산했지만 서울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 경영난이 닥쳤다.
서울시 지금도 MOU를 계속 내놓고 있다. 3년 만에 전기차 보급사업을 재개하면서 최근 1년간 교환한 MOU만 10건에 달한다. 대부분 전기차 보급 활성화를 위해 관련 기업과 협력한다는 내용이지만 업계는 알맹이 없는 홍보성에 불과하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전기차 셰어링 등 보급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충전기 업체와 협력도 보이는 성과가 좀체 없다. 서울시 예산을 투입한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름만 올린 홍보성 MOU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법적구속력이 없으니 서울시를 탓할 수 없다. 하지만 체결 후 나몰라라 하는 ‘MOU 행정’은 자제돼야 한다. 한국 수도답게 과감한 전기차 보급 정책을 내놓기 바란다. 전기차 업계는 유럽 유명 도시처럼 전기차 전용 도로나 주차구역 등 서울시의 ‘아이디어 정책’을 기다린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