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가 범국가적 소프트웨어(SW)산업 활성화에 시동을 걸었다. SW 분야 전반에 걸쳐 제도 개선이 추진되고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SW산업 활성화를 도모하기에는 미흡하다. 보다 적극적 개선이 필요하다. 핵심은 공공SW 발주제도 개선이다. 우리나라 공공부문은 SW 발주자 전문성이 부족했다. 공공기관은 SW 프로젝트를 발주할 때 기획 단계부터 부실하게 설계돼 여러 부작용을 야기했다. 기획이 부실하니 SW 개발예산이 부적절하게 편성됐고 이는 국가 예산 운용 효율성 저하로 이어졌다. 초기 요구사항이 불명확하니 과업 도중에 추가·변경 요구가 빈번했다. 마치 정부가 고층빌딩을 발주하면서 설계도는 단 한 장만 제시하고 계약을 강요한 것과 같다. 빌딩이 올라가는 도중에 수시로 부수고 재시공을 요구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변경할 때마다 예산·납기일을 재조정하는 일은 없다. 공무원 책임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을 입장에 놓인 민간 개발기업은 변경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기업 수익성은 악화됐다. SW 개발자는 한번에 끝낼 일을 서너 번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하는 노동자로 전락했다. 컴퓨터학과는 학생이 가장 기피하는 학과가 됐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난다. 미국은 공공 SW사업 추진 시 사업계획을 명확히 하고, 비용 추정 정확도 향상을 위해 관련 문서를 철저히 작성·검증한다. 발주계획서(AP)·시스템결정서(SDP)·요구사항리스트(PWBS)·정보화원가분석서(IGCE) 등 프로세스별 전문화된 문서를 작성한다. 프로젝트를 중도에 추가하거나 변경할 때는 관련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했다. 공공기관 인력이 SW 전문성이 없다면 민간전문가를 활용한다. 영국·핀란드·네덜란드도 공공 SW사업 추진 시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민간 컨설팅 기업을 적극 활용한다. 특히 SW사업 추진 시 요구사항 도출, 예산수립, 과업변경 관리 등을 위해 발주·관리 전문가 즉, ‘스코프 매니저(Scope Manager)’를 운영한다. 이들은 협회를 구성하고 발주 요청 시 발주자와 함께 사업에 참여한다.
우리나라도 공공부문 SW 발주 시 프로와 같은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전문성 확보는 공공기관 스스로가 단시일 내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러한 공공SW사업 발주자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SW 발주기술지원 센터’가 문을 열었다. 센터 성공을 기원하며 몇 가지 고려사항을 주문해본다.
첫째, 발주지원센터에서는 발주기관별 특성·환경·내용 등을 고려해 맞춤형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또 이들 기관이 전문성을 갖추도록 각 기관 발주자 역량을 향상시키는 교육훈련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
둘째, 요구사항 명확화뿐 아니라 기획단계·예산확보·발주준비·사업자 선정·사업관리·사업종료에 이르기까지 사업 전 과정에 걸쳐 발주자 역할을 선진국형으로 혁신해야 한다. 오버스펙 방지를 위한 요구사항 도출, RFP 작성, 비용 산정 등 발주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내용이 그 시작이다.
셋째, 공공 발주자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예산확보에만 힘을 쏟고 민간개발기관과 관계는 소홀히 했다. 모호한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갑을 관계 지위를 악용해 요구사항을 임의로 변경하는 악습은 버려야 한다.
정보화 시대에는 그 어느 분야, 그 어느 기업도 SW 없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일자리도 창출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후진적 SW 발주 관행은 오늘 우리나라 청년 일자리 부족 원인 제공자 중 하나다.
넷째, 수주자도 변해야 한다. 과거처럼 공공기관 요구를 한없이 수용해 가격을 끝없이 낮춰주고 질도 떨어뜨리는 최저가 수주관행을 추방해야 한다.
올해 SW구축 예산은 2조7196억원으로 작년 대비 5.8% 증가했다. 이를 집행 관리하는 발주자 역량이 올라갈수록 SW산업이 발전된다. SW 제값 주기 문화도 정책될 것이다. 직접적 지원체계인 ‘공공SW 발주기술지원 센터’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고건 이화여대 석좌교수 kernko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