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반도체설계) 업계가 웨이퍼를 수입·반출할 때 이중 과세를 적용받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과세 고시 개정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팹리스 기업은 해외 팹에서 가공한 웨이퍼를 수입할 때 관세(0%)와 부가세(10%)를 납부한다. 이후 패키징 업체에 웨이퍼를 빌려주고 가공하는 무상사급을 거친다.
패키징 업체는 보세공장 허가를 받은 곳이다. 보세공장은 통관 절차가 끝나지 않은 해외 화물을 가공·제조할 수 있도록 허가받기 때문에 여기서 가공을 거친 제품에 별도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보세공장에서 패키징을 마친 뒤 제품을 반출할 때 관세와 부가세를 다시 납부하는 이중과세가 이뤄지는 게 문제다. 이미 원재료인 웨이퍼에 세금을 냈는데 보세공장에서 가공한 완제품에 다시 세금을 내는 것이다.
과세 기준을 선택하는 권한을 팹리스가 아닌 패키징 업체가 보유했기 때문에 이중과세가 발생한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현 과세 기준은 ‘제품 과세’와 ‘원료 과세’ 중 하나를 선택하는 형태인데 대부분 패키징 업체가 제품 과세를 택한다. 원료 과세 기준을 적용하려면 수입한 원료(웨이퍼)를 세관에 사전 신고해야 하는데 절차가 복잡하고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제품 과세를 선택하다보니 원료 수입 시 세금을 납부하고 완제품에 또 세금을 내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팹리스 업계는 원료를 수입하고 납세하는 주체가 팹리스이기 때문에 원료 과세 기준을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팹리스가 과세 기준을 선택할 수 있거나 원료과세 사전신고 절차를 간소화해 패키징 업체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똑같이 국내에 위치한 패키징 업체라도 해외 업체는 임가공 감면을 받지만 한국 업체는 감면을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보세지역은 관세법상 ‘외국’으로 분류해 수출입신고를 한다. 대외무역법 기준으로는 국경을 거치지 않으니 ‘국내’로 분류하므로 국내 업체만 감면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일부 업체는 세금 감면을 받기 위해 일부러 해외 패키징 업체로 갈아타는 사례도 있다.
이중으로 낸 세금은 향후 부가세 환급 절차를 거쳐 돌려받는다. 하지만 관세평가 시 의도치 않게 개발비 누락 등의 문제가 자주 발생해 세금 추징 대상이 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업계가 혼란을 겪고 있다.
변병준 조인관세사사무소 관세사는 “2013년 7월 부가가치세법이 개정돼 무관세 품목인 반도체도 부가가치세 추징 여부가 중요해졌고 수입신고 시 적정하게 과세가 됐는지 추징 문제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복잡한 과세 기준으로 의도치 않게 일부 세금을 누락해 추징당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전했다.
또 “해외는 수탁자(보세공장)가 아닌 위탁자가 과세 기준을 선택하는 데 국내는 정반대”라며 “위탁자인 팹리스가 과세 기준을 선택하거나 국내 패키징 업체를 해외임가공 감면대상으로 포함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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