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형 인간에 대해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발표되면서 ‘저녁형 인간=게으르다’는 통념이 깨지고 있다. 오히려 ‘아침형 인간’보다 영리하고 창의적이지만 아침형 생활 리듬에 맞춰진 사회구조 탓에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009년 영국 런던정경대 사토시 가나자와 교수팀은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청소년 2만745명을 대상으로 수면 패턴과 IQ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집단의 IQ가 더 높았다. 연구팀은 이를 ‘사바나 IQ 상호작용 가설’에 적용해 인간은 낮에는 생활을 위한 일을, 밤에는 독창적인 일을 하며 진화했기 때문에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 늦게까지 깨어 있도록 발달했다고 분석했다.
스페인 마드리드대 연구팀도 지난 2013년 12~16세 청소년 88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저녁형이 창의력이 높고 귀납추리능력과 문제해결능력이 우수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학업성적은 아침형이 더 좋았는데, 연구팀은 학교 수업이 이른 아침에 시작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저녁형은 아침형과 수면패턴이 반대다. 아침형은 초저녁에 깊은 잠을 자고 새벽으로 갈수록 얕은 잠을 잔다. 반면 저녁형은 새벽부터 아침까지 깊은 잠을 잔다. 저녁형은 매일 아침 꿀잠을 잘 시간에 억지로 눈을 뜨고 등교 준비를 하는 것이다.
집중력이 높아지는 시기도 다르다. 아침형은 오전에 집중력이 가장 좋고 오후 6시부터 급격히 주의력이 분산된다. 반면 저녁형은 오후부터 집중력이 높아져 저녁 6시에 정점을 찍는다.
벨기에 리에주대 필리프 레이그눅스 박사팀은 아침형과 저녁형이 각각 잠에서 깬지 1시간 반 뒤와 10시간 반 뒤 집중력이 필요한 과제를 주고,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를 촬영했다. 일어난 지 1시간 반 정도 지나 진행한 오전 과제는 두 집단 뇌 활성화 정도가 비슷했다. 하지만 일어난 지 10시간 반 뒤 진행한 저녁 과제는 저녁형 뇌 활성화 정도가 눈에 띄게 활발했고, 문제 해결 속도도 빨랐다. 현재 아침형 중심으로 맞춰진 일과를 1~2시간만 뒤로 미루면, 저녁형이 오전부터 늦은 밤까지 높은 집중력으로 일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내용은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돼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건강면에서 저녁형을 우려하는 연구결과가 많다. 고려대안산병원 김난희 교수팀은 47~59세 성인 남녀 1620명을 대상으로 혈액검사와 CT 촬영, 생활 습관에 대한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남성은 저녁형이 아침형보다 비만 확률 3배, 노화에 따른 근육 감소증에 걸릴 위험이 4배 컸다. 당뇨 가능성도 높았다. 여성 역시 저녁형이 아침형보다 심장질환 위험을 증가시키는 대사증후군 위험이 두 배 높았다.
영국 로햄턴대 연구팀은 성인 10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침형이 저녁형에 비해 평균 체중이 더 가볍고, 평소 느끼는 행복감도 더 큰 것으로 분석했다.
아침형과 저녁형을 결정하는 수명과 생활 패턴은 유전적 영향이 크다. 지난 2003년 영국 연구팀은 저녁형이 아침형에 비해 ‘PER3’ 유전자가 짧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처칠, 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대표적인 저녁형 인간으로 알려졌다. 모차르트는 떠오르는 악상을 정리하기 전에는 잠을 자지 않아 새벽까지 작곡을 했고, 처칠은 새벽 4시에 잠들어 오후에 일어났던 생활로 유명하다. 저녁형 기질인 높은 창의력과 혁신을 추구하는 성향이 잘 드러난 사례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인재들이 숨어있는지 모른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똑같이 강요하는 사회에 살다보니 자신의 기량을 최대로 발휘해 볼 기회조차 없이 살고 있을 뿐일지도.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