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대응과 원전 안전, 전력 수요전망 등 첨예한 논란에 휩싸였던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정부안이 8일 공개됐다. 반전은 없었다. 지난 6차 계획때 대규모 석탄화력이 여러 개 들어서면서 7차 계획에선 신규 건설물량은 없을 것이라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원전에 방점을 찍었다. 일부 계획이 불확실했던 석탄발전은 빼버리고 원전 2기를 신규 건설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온실가스 감축과 발전원 비율을 맞춘다는 명분은 충족됐다. 하지만 원전에 대한 민심이 긍정적이지만 않다는 것이 풀어야 할 숙제다.
◇6차 계획 보완 위한 현실적 선택
7차 계획은 △안정적 전력 수급 △수요전망 정밀성과 객관성 확보 △에너지 신산업·수요관리 목표 확대 △온실가스 감축과 전원 믹스 강화 △분산형 전원기반 구축 등 5대 원칙에 맞춰 수립됐다. 전력수급 안정성을 확보하되 수요 감축 노력을 반영하고 발전원 간 비중 합리화와 송전망 문제 해결점을 찾겠다는 취지다.
6차 계획에 쏟아진 비판과 지적사항을 수정·보완한 모습이 여러 군데 보인다. 국회 및 사회단체에선 총 16GW에 달하는 신규 설비가 포함된 6차 계획에 대해 과다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7차 계획 전망은 이보다 훨씬 보수적으로 잡혔다. 신규 확정 설비라 해봐야 원전 2기, 3GW가 전부다. 석탄화력과 LNG 신규건설 물량은 아예 없다.
올해 최대전력도 6차 당시 예상인 8만2677㎿에서 8만2478㎿로 낮춰 잡는 등 2017년까지 최대전력을 적게 예상했다. 7차 계획 최종 연도인 2029년 기준, 수요관리 목표도 전력소비량 14.3%, 최대전력 12%를 줄이는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2차 에너지기본계획보다 감축량을 더 높게 예상했다. 6차 계획때는 순환정전과 전력수급 부족에 공급능력 확대에 급급한 면모를 보였다면 이번 7차 계획은 수급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상황을 반영해 종합적 판단을 한 셈이다.
원전이 사실상 확정설비 형태로 결정된 것도 정책적으론 차선책이다. 이미 6차 계획에서 석탄과 LNG는 각각 1만740㎿, 5200㎿가 확정됐지만 원전은 4기 물량인 6000㎿가 유보됐다. 정부는 신규 석탄과 LNG 발전소를 추가하는 것보다 원전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포스트 2020 등 신기후변화 체제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국제사회 압력과 배출권거래 등 관련 비용 상승도 감안해야 했다.
원전 산업 육성 측면도 있다. 이번에 결정된 원전은 1500㎿ 설비로 한국형 최신 원자로 모델인 APR+가 적용될 예정이다. UAE 수출모델인 APR1400보다 개선된 설비로 개발은 됐지만 아직 설치 실적은 없다. 원전 정책 기조 유지와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도 신규 원전을 육성하는 계기를 닦은 셈이다.
신재생에너지와 분산전원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지금보다 약 5배, 발전량 기준으로는 4배까지 키우고, 분산전원도 12.5%로 전원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다. 추가 송변전 설비 건설이 필요한 대규모 발전설비보다 지역단위 전원계획으로 방향을 선회한 모습이다.
◇도마 오른 7차계획, 당분간 논란 불가피할 듯
보수적 전망에 기초해 현실적 차선책을 선택했지만 7차 계획 앞날은 험로가 예상된다. 9일 예정된 사업자 설명회부터 18일 공청회와 이달 열릴 국회 보고까지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논쟁을 앞뒀다.
현재 도출된 7차 계획은 지역민심이나 관련 사업자 의견 등 주변여건과 주관적 판단 등은 배제하고 수치와 예측모델 만으로 결정된 안이다. 반면에 공청회 등은 앞서 배제됐던 판단 기준이 관여하는 단계다.
일단 원전 논란은 피할 수 없다. “과도한 원전 확대 정책이냐” “현실적 선택이었냐”가 논쟁의 중심에 설 전망이다. 국회와 사회단체는 사용후핵연료와 고리 원전 1호기 재 수명연장 등 이슈를 들어 7차계획에서 원전 정책기조 유지를 반대해 왔다. 신규 원전 후보지인 삼척과 영덕도 반대의사를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7차 계획에선 석탄과 LNG 신규계획 없이 원전만 추가된 만큼 원전 관련 논쟁 수위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2029년 기준 전원구성으로 보면 석탄(26.7%), 원전(23.7%), LNG(20.5%), 신재생(20.0%)로 에너지 믹스 평준화를 맞췄지만 표면상으로는 원전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지만 보수적 수요전망으로 타협 여지가 적었던 만큼 정면 돌파라는 어려운 길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20% 이상 전력예비율도 논쟁 대상이다. 값싼 발전소가 먼저 발전하는 경제급전 우선순위 체제에서 예비력 확대는 후순위 사업자 퇴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미 원전, 석탄 다음 3순위 발전원인 LNG 발전소를 운영하는 민간 기업은 예비력 확대로 발전소를 놀리는 어려움에 처했다. 일부 석탄화력 사업을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사됐지만 이보다 더 저렴한 원전이 들어오면서 전력도매시장 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발전공기업은 신규 건설계획 백지화에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당장 신규 건설 사업을 할 수 없게 됐다. 남동발전은 영흥화력 7·8호기 계획이 철회되면서 그나마 있던 사업도 사라졌다. 일부 노후발전소 교체의향서를 내려했던 곳도 잠시 계획을 보류해야 될 상황이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7차 계획은 기술과 시장, 외교 부문에서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며 “논란 여지는 많겠지만 정부 차원에서도 선택 여지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