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격으로 시작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9일을 기점으로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11일 권리주주 확정일을 앞두고 9일까지 매입한 주식이 삼성물산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매입한 지분은 7월 17일 열리는 주총에서 합병의 향배를 가르는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이미 확보한 지분 7.12%만으로 주총에 참여한다. 엘리엇은 지난 4일 ‘경영 참가’ 목적으로 삼성물산 주식을 매입했다고 공시했는데 자본시장법상 ‘냉각 규정’에 따라 5거래일이 되는 11일까지는 지분을 추가로 매입할 수 없다.
엘리엇은 지난 4일 삼성물산 지분 7.12%인 1112만5927주를 주당 6만3500원에 장내 매수하고 합병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260억달러 자산을 운용 중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합병 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아 삼성물산 주주 이익에 반한다고 믿는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내달 주총에서 특별 결의 사안인 합병 승인 안건이 통과되려면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찬성과 발행 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한다. 양사 합병안에 따르면 1조5000억원 주식매수청구권이 행사되면 합병이 취소될 수도 있다.
삼성물산과 엘리엇은 9일 거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는 후문이다. 양측이 연대 가능한 국내외 큰손이 이날 지분을 얼마나 사들였나에 따라 주주총회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이 지분을 추가했다고 밝힌 4일 이후 삼성물산 거래량은 급격이 증가했다. 물론 대부분이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자였지만 일부는 양측 우호세력을 자처한 숨은 큰손들도 있을 거라는 게 증권가 분석이다. 실제로 4일과 5일은 1000만주 이상 거래되며 평소의 3배 거래량을 기록했고 8일에도 870만주 이상이 거래돼 궁긍증을 높였다.
삼성물산 최대 주주 가운데 9.79%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움직임도 관심사다. 일반적으로 국내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는 삼성물산을, 외국인 주주들은 엘리엇 우호 세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실제 주주들의 속마음 셈법은 각기 다를 수 있다는 게 현실이다.
엘리엇은 이미 지난 5일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요 주주에게 합병 반대에 동참해달라는 서한을 보내며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결국 주총일까지 양측의 피말리는 우호 지분 확보전이 벌어질 것은 자명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삼성물산 현재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인 5만7234원보다 훨씬 높아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들이 합병 무산에 따른 주가 하락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오진원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11일 주주확정 기준일까지 외국인 순매수 여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2004년 영국 헤르메스펀드의 ‘투자목적’ 지분 취득과 달리 엘리엇은 ‘경영참여’ 의지를 공시했고 최근 DMG모리세이키나 동아시아은행 지분 매각 관련 소송 등 사례를 감안할 때 초단기간 내 차익 실현 가능성 높지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이 가진 삼성물산 지분은 2대 주주인 삼성SDI의 7.39%를 비롯해 삼성화재 4.79%, 이건희 회장 1.41%, 등 13.99%다. 이 밖에 자사주 5.76%가 있지만 의결권이 없어 도움이 안된다.
반면에 외국인 지분율 변화가 감지돼 주목된다. 8일 기준 외국인 지분율은 33.70%로 합병이 발표된 지난달 26일 이후 32.11%까지 내려갔다가 엘리엇 등장 이후 다시 높아졌다. 일부 외국인 주주는 합병에 반대 의견을 표명하면서 엘리엇과 연대를 시사하기도 했다.
삼성물산 지분 0.35%를 보유한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사는 “가치에 비해 합병 비율이 너무 낮아 합병 가격이 조정되지 않으면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주목된다.
이성민기자 s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