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은 엘리엇 측 가처분신청으로 오히려 상대측 수가 드러난 것으로 판단했다. 주총 결의금지를 신청한 것은 스스로 의결권을 행사할 만큼 지분을 확보하지 못했음을 외부에 공식화한 것으로 봤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돌발변수에 대응하기 위한 ‘시나리오별 대책 세우기’에 골몰했다.
삼성물산은 일부 세력이 엘리엇에 의결권을 위임하거나 자사 주식을 매수해 엘리엇 진영에 서는 엘리엇 우호세력 형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또 엘리엇이 합병 이후에도 주주로 남아 삼성그룹 주주정책을 압박할 가능성도 염두에 뒀다.
9일 삼성물산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방어하는 쪽이 먼저 움직이는 행태는 최대한 자제하는 주주권 분쟁 대처 매뉴얼이 고스란히 적용됐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회사 대응방침은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삼성 계열사가 지분을 추가 매수하거나 우리(삼성물산)가 자사주를 매각해 백기사를 확보하는 등 대응책이 결정된다면 곧바로 공시할 것”이라고 말해 다양한 대책이 짜여지고 있음을 내비쳤다.
주주총회 때까지 단기 대응책과 함께 엘리엇 공세가 예상보다 장기화될 수 있다는 가정도 해놓은 상태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가 2002년 엘리엇과 소송전을 겪었고 2004년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지분 매입 등을 이미 경험했다. 지배구조 개편 핵심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변수를 사전에 준비했을 것이란게 일반적 관측이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이 적극적 대응을 보인다면 다음달 17일 주총에서 반대 3분의1 이상을 채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면서 “주가가 매수청구권 가격을 큰 폭 상회하는 상황에서 엘리엇을 비롯한 주주들이 실질적으로 매수청구권을 쓸 가능성도 낮아 어려움이 있지만 합병은 진행되고 엘리엇은 합병 법인 주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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