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9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저지하기 위한 법적 절차에 착수했다.
엘리엇은 이날 발표한 자료에서 “합병 안이 명백히 공정하지 않고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며 불법적이라고 믿는 데 변함이 없다”며 “합병 안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늘 삼성물산과 이사진들에 대한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하는 법적 절차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엘리엇은 “이는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가처분소송은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됐다. 엘리엇은 다음 달 17일 열리는 주총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결의안이 통과되지 못하게 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은 엘리엇의 법적절차 개시와 관련해 “공시송달을 통해 관련 서류를 정식으로 전달받으면 법무팀 등 내부 검토를 거쳐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엘리엇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M&A업계 관계자들은 최종 대상은 삼성물산이 아니라 삼성전자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비율을 수정하기 위해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 독소조항을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투자자가 특정국가 법령이나 정부 정책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인 ISD 독소조항은 한미 FTA 최종협상 때도 이슈화한 적이 있다.
업계는 향후 엘리엇 소송 행보와 관련해 국내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뒤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ISD 소송을 제기하고 추후에는 자사 소재지인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관측했다.
삼성은 엘리엇의 의도를 예의 주시하면서 향후 예상되는 법적 공방에 대처하기 위해 그룹 법무역량을 총동원해 대응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삼성과 엘리엇은 2000년대 초반 삼성전자 정관 변경을 놓고 법적 다툼을 벌였다.
삼성전자는 1997년 기존 우선주의 배당률을 높이고 신규 발행 우선주를 10년 후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관을 변경했다. 해당 내용은 2002년 2월 주주총회 정관 변경안 결의로 다시 삭제됐다. 이에 엘리엇 자회사인 맨체스터 시큐리티즈가 반발해 삼성전자를 상대로 주주총회 결의 불발효 확인 소송을 냈다.
법원은 당시 “정관 삭제 결의는 우선주 주주들만의 주주총회를 거치지 않고 이뤄진 만큼 효력이 없다”며 맨체스터 시큐리티즈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전자의 상고로 대법원까지 무대를 옮긴 양측 공방은 2006년 대법원이 맨체스터 시큐리티즈의 손을 들어주며 4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성민기자 s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