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국내 스타트업 요람인 대학 창업보육센터에 첫 재산세 부과 판결을 내렸다.
대학은 이번 판결이 잇단 지자체 재산세 부과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했다. 일부는 과도한 세금 폭탄으로 문을 닫는 보육센터가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15일 행정자치부와 중소기업청, 한국창업보육협회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달 재산세 등 부과 처분 취소와 관련한 한국산업기술대학(이하 산기대)과 시흥시 간 최종 재판에서 대학 창업보육센터가 교육 사업에 직접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산기대에 억대 재산세를 부과한 시흥시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10월 산기대 창업보육센터가 교육사업 자체에 직접 사용되고 창업보육센터 운영을 수익사업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시흥시 재산세 부과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한 서울고등법원 2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산기대가 지난 2012년 창업보육센터를 상대로 수년치 억대 재산세를 소급해 부과한 시흥시에 맞서 위법하다며 재판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내려진 판결이다.
재산세 부과를 놓고 부처 간 정책 혼선을 빚는 상황에서 내려진 대법원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 사실상 대학 창업보육센터에 민간인 대상 임대사업자라는 꼬리표를 달아준 격이다.
현행 법령은 대학교 일반 교육연구시설(교육·연구용 부동산)에 재산세를 100% 면제하도록 돼 있다.
대학 창업보육센터는 중소기업청 창업보육센터 지원사업이 시작된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초까지 재산세를 물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수년 전부터 정부 정책 기조가 달라졌다. 국립대를 제외한 사립대가 운영하는 창업보육센터는 교육과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대학 고유 시설이 아니라며 행자부와 지자체가 지방세특례제한법 제60조 제3항에 의거해 재산세 50%를 부과하기 시작한 것이다.
행자부는 사립대 창업보육센터가 일반인에게서 일부 임대료를 받고 있는 만큼 기업 대상 임대 사업에 면세를 해 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시흥시도 이러한 행자부 방침과 법령을 근거로 산기대에 재산세를 부과했다.
이와 달리 교육부는 대학설립운영규정 제4조 제1항에 근거해 산학협력단 소속 창업보육센터가 교사 범주에 해당한다는 유권 해석을 내놓았다. 유권 해석대로라면 행자부는 사립대라 하더라도 창업보육센터에 재산세를 부과해서는 안 된다.
부처 간 정책 혼선이 계속되자 정부는 지난해 교육부, 미래부, 법무부, 중기청 등을 아우르는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열고 ‘벤처·창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선 추진 방안’ 일환으로 창업보육센터 재산세를 100% 감면하기로 방침을 정리했다.
하지만 행자부는 당시 소송이 진행 중이던 시흥시와 산기대 간 대법원 판결을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며 지방세 과세 방침을 철회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 판결은 3년여 끌어온 정부와 대학 간 법정 싸움에 대법원이 행자부와 지자체 손을 들어준 셈이다.
조영진 행자부 지방세특례제도과장은 “사립대 창업보육센터는 교육·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학교 고유 목적 시설로 보기 어렵다”며 “대법원 판결처럼 예나 지금이나 일관되게 사립대 창업보육센터에 재산세 부과를 해야 한다는 방침은 변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소식을 접한 많은 대학은 당혹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산기대 손을 들어준 서울고법 2심 판결을 지켜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사립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대학은 이번 판결로 매년 수천만원에 달하는 재산세를 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부는 과세 시점을 기준으로 5년치 재산세를 소급해서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시흥시 승소를 계기로 다른 지자체도 대학 창업보육센터에 지방세 과세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됐다.
대학은 정부가 창업 지원 최전방 기지로서의 중요성은 간과한 채 대학 고유목적사업을 한정적으로 해석하고 과세 당국 견해만 지나치게 고려했다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기점으로 향후 창업보육사업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계형산 한국창업보육협회장은 “대법원 판결이 지방 재정 확충에 다소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장래 국가 경제 전체를 놓고 볼 때 손실은 수십 배, 수백 배가 될 수 있다”며 “국가 경제 초석이자 창조경제 핵심 사업인 창업보육사업에 대학이 안심하고 투자, 사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창업보육센터 관계자는 “창업보육사업이 대학 연구·교육 기능과 맞물려 대학과 창업기업 모두에 유익한 사업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판결로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됐다”며 “굳이 과세 당국 입장만 고려한 것은 당초 창업 보육 정책 취지를 무시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창업보육 정책을 펼쳐온 중소기업청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재산세 부과 관련 자체 규정이나 법령이 없어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은 못 된다.
차선책으로 교육부 시행령에 교사 범주로 창업보육센터를 명기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일일이 시행령을 고쳐 명기할 수는 없다는 교육부 주장에 부딪혀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곽홍근 중기청 사무관은 “이번 판결로 그동안 창조경제 전진기지 역할을 해 온 사립대 창업보육센터가 안타깝게 됐다”며 “문제를 풀고자 행자부 등 정부 부처와 계속 협의를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창업보육센터 지정현황(’15.5월 현재 기준)
○ 보유주체별
○ 지역별
(단위 : 개, %)
〃 연도별 창업보육센터 지원 예산 현황
(단위 : 억원)
〈지역별 창업보육센터 사업성과(‘14년말 기준)〉
* ( ) 비율
◇서울고등법원:창업보육센터용으로 사용된 대학 부동산이 원고 교육 사업 자체에 직접 사용됐으니 재산세 등 비과세 대상에 해당된다.
◇대법원:고등교육법에 따른 학교가 창업보육센터 사업자로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경영, 기술 분야 지원 활동을 하면서 창업자를 위한 시설과 장소로 부동산을 제공하는 사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교육사업에 직접 사용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