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우리나라가 원전 기자재를 제3국에 수출할 때 미국에 한번 확인된 품목이면 추가 통보 없이 수출할 수 있게 된다. 미국과 공동연구 중인 핵연료 재활용 기술인 ‘파이로 프로세싱’을 활용할 수 있는 길도 활짝 열린다. 지금까지 40년 이상 미국의 ‘일방적 통제’ 아래 놓여 있던 원자력 지위가 ‘균형’ 쪽으로 한걸음 전진했다.
유병세 외교부 장관과 어니스트 모니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15일(현지시각) 워싱턴DC 에너지부에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안에 정식 서명하고 발효를 위한 모든 양국 행정적 절차를 마무리했다. 지난 4월 양국 간 협상이 타결된 뒤 가서명을 거쳐 한 달 반 만에 정식 서명까지 이르렀다.
우리 원전 산업계는 지난 42년간 묶여 있던 통제 틀을 벗고 새로운 플랫폼 위에서 관련 기술연구와 사업화를 꾀할 수 있게 됐다.
가장 기대되는 분야는 핵연료 사후 관리와 원전 기자재 수출이다.
새로운 협정서 핵연료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금지하는 조항이 사라진 만큼, 현재 미국과 공동 연구 중인 핵연료 재활용 기술 파이로 프로세싱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오는 2051년부터 처분장 운영을 권고 받은 정부로선 포화상태에 이른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채널을 확보한 셈이다.
원전 수출 부문은 번거로운 인허가 절차가 생략되면서 여건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기존 협상에선 제3국으로 원전 관련 기자재를 수출할 때 매번 이를 통보하고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신협정이 발효되면 이미 확인된 기자재는 추가 통보 없이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게 된다.
신협정 발효 시점은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미 의회 통과와 우리나라 국회 확인 등 절차가 남아있지만 큰 변수 없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절차가 완료되면 상대국이 이를 통보하는 것으로 협정은 발효된다. 기존 협정 시한이 내년 3월까지지만 그 이전에 발효될 수 있다. 미 의회 최종 통과 일정이 90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초엔 신협정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양국 행정부 차원 협의는 계속 진행된다. 신협정 발효와 함께 한미 양국은 차관급 실무협의체인 고위급위원회를 가동한다. 고위급위원회는 우리 외교부 차관과 미 에너지부 차관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산하에 △사용후핵연료 관리 △원전연료 안정적 공급 △원전수출 증진 △핵안보 4개 분야 실무그룹을 설치해 운영한다.
고위급위원회는 협정 준수를 위한 분야별 구체적 행정이행과 규칙 등을 조율한다. 이 자리에서 매년 개정 수준에 가까운 협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미국 측이 요구하는 원자력 안보와 기술수준을 어디까지 수용하고 협상하는지에 따라 우리나라 원전 산업계 운신의 폭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원전 산업 관계자는 “신협정이 통제적 성격을 벗어난 것은 의미가 있지만 고위급위원회 결과가 있기 전에는 실익을 예단할 수는 없다”며 “앞으로 구체적인 이행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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