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혹은 모조품을 속되게 이르던 말이 ‘짝퉁’이다. 속어처럼 쓰이다가 어느새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될 지경까지 이르렀다. 명품이나 의류에서 화장품, 휴대폰, 불법 의약품까지 확산일로에 있다. 최근 발표된 현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짝퉁시장 규모가 유통가격 기준 5조2000억원 규모에 이른다고 한다.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위조 상품, 이른바 짝퉁으로 인해, 기업 피해는 물론이고 사회적 혼란도 무시하지 못할 비용이다. 지식재산권 보호가 절실한 현 상황에서 브랜드 보호 및 보안 기술 분야 연구와 개발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기업이 연구와 투자를 하고 있으나 짝퉁시장 규모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눈길을 돌려, 얼마 전 사회적 문제가 된 원전비리를 생각해 보면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금전적 비용도 비용이지만 자칫 그로 인해 벌어질 수도 있는 국가적 재앙을 떠올리게 되면 소름이 끼친다. 사건의 시발이 시험성적서 위조였다고 하는데 “위조가 불가능한 보안용지 사용을 의무화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남는다.
지난해 한국조폐공사는 “짝퉁·위조 잡는 보안기술, 주인을 찾습니다!”는 주제로 위·변조방지 신기술 설명회를 가졌다. 60여년 업력 조폐공사 연구진이 개발한 위조방지 기술을 국민과 기업에게 알려 가짜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화폐나 수표, 그리고 조폐공사가 제조하는 600여개 제품에 쓰이는 위·변조방지 기술이 처음으로 민간 기업과 손을 잡게 된, 조폐공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대 사건’이었다.
설명회에 참석한 어느 민간사업자는 “공공의 목적으로 개발된 기술이 민간에도 이렇게 아주 긴요하게 쓰일 수 있으니, 창조경제를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겠군요”라는 말로 관계자에게 덕담을 건넸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기술은 전통적으로 사람의 눈에 의존하던 위조방지 기법에 IT를 적용, 스마트폰으로 식별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한 것이었다.
보안패턴을 이용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문양이 스마트폰 앱(APP)으로 확인되는 Smartsee(스마트시), 빈 여백에 QR코드가 스마트폰 앱으로 보이고 자동으로 해당 사이트로 연결되는 히든 QR, 위·변조방지 기술이 적용된 브랜드 보호용 라벨 등 많은 기술이 민간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이미 본격적으로 상품생산에 적용됐거나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장점은 기술적으로 복제가 쉽지 않고, 추가 설비가 특별히 필요 없어 저비용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짝퉁으로 인한 피해가 컸던 기업에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화장품 패키지, 각종 증명서, 골드바, 생활용품 포장, 라벨 등에 적용돼 누구든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손쉽게 정품 인증이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규모로 짝퉁을 제조·판매하는 조직 대응이 눈에 띄게 빨라졌기에, 아무리 훌륭한 위조방지 기술을 개발해 내놓는다 하더라도 곧 바로 새 버전 위·변조방지 기술개발을 고민해야 한다.
위·변조방지 기술 연구 개발을 위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이유다. 물론, 국민의 위·변조 방지 기술 활용에 관심도 절실히 요구된다.
더 시급한 건 위·변조 방지기술 의무사용을 위한 정부 차원 관련 법령 제정이다. 관련 기관이 최근 들어 보안용지 사용을 늘리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시험성적서 등에 보안용지 채택을 제도적으로 의무화한다면 천문학적인 사회적 기회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멀리서 찾던 창조경제는 결국 우리 가까이에 있다.
김화동 한국조폐공사 사장 kim2045@koms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