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수준이 상향 평준화됐다. ‘그게 그거’라는 소비자 인식에 감동을 주려면 작은 차이부터 바꿔야한다”
차강희 LG전자 HE(홈엔터테인먼트)디자인연구소장(상무)은 치열해지는 전자제품 디자인 경쟁에서 LG의 승부요소로 사람과 소통을 꼽았다. 그는 1991년 LG전자에 입사, 초콜릿폰과 샤인폰을 성공시킨 LG ‘슈퍼 디자이너’ 1호다. 2011년 HE사업본부로 옮겨 TV, 모니터, PC 등을 디자인하고 있다.
차 소장은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고 했다. 의미에 맞춰 디자인하기보다 우선 다른 디자인을 만들어 의미를 부여한다. 스피커를 숨기는 경향을 거슬러 양 옆에 배치해 화제가 된 지난해 울트라HD TV UB9800에는 ‘소리에 자신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TV 본체뿐만 아니라 리모컨, 스마트TV 운용체계(OS) 등 부가기능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LG전자는 올해 직립 리모컨을 업계에서 유일하게 내놓아 어디서든 쉽게 찾도록 했다. 웹OS에는 자체 개발 캐릭터 ‘빈 버드’를 넣어 어려운 TV 설정을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기능 증가가 TV를 어렵게 만든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경쟁사 스마트TV 사용자환경(UI)에 대해서는 “웹OS와 많이 닮았다”며 “매직리모컨, 웹OS 등 LG전자가 작은 요소부터 섬세하게 소비자를 배려하고 바른 길을 선도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평했다.
지난해 시장 호평을 받은 980g 울트라북 ‘그램’에는 ‘들고 다니고 싶은 노트북’ 이미지를 담았다. 차 소장은 “기술 발전으로 아이디어를 가시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며 “기술, 상품기획 등 사내 부서와 협업이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이종산업 간 융합이 가능해지며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디자인에는 제품의 ‘본질’을 담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오디오의 경우 멋에 집중하기보다 소리를 들려주는 기능을 살려야한다는 것이다. 차 소장은 기능과 기술, 디자인이 균형 있게 모인 ‘하모니 디자인’이 소비자에게 도움을 준다고 믿는다.
기업 간 거래(B2B) 제품에도 디자인 중요성은 커진다. 단순히 색을 단색으로 바꾸는 게 아닌 ‘보이지 않는 사용성’에 대해 고민한다. 디지털 사이니지의 경우 기업고객이 제품을 설치, 교체할 때 편리하도록 하고, 설치 후 누릴 수 있는 효용성을 느끼도록 설계한다.
차 소장은 디자인 아이디어의 발현 조건으로 ‘자율성’을 꼽았다. 경직되지 않은 가정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이뤄지는 소통이 좋은 아이디어를 만드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가 있는 서초R&D캠퍼스는 이러한 공간들을 갖췄다. 그는 “디자인은 사람의 일”이라며 “디자이너가 있는 공간에는 ‘디자인 에어’가 흐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끄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LG 디자인 철학은 사람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이다.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