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백신이 없다는 것이다. 다수의 사망자가 70·80대로 천식이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치사율이 16.1%로 높고 특별한 질환이 없었던 40∼60대 환자가 사망하기도 했다. 평소 건강했던 30대 의사와 경찰관이 위독한 상태에 이르는 것을 봤다. 어떤 확진자도 내가 메르스에 걸릴 것이라 예상했던 사람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백신이 없는 병에 ‘내’가 걸릴 수도 있다는 공포감은 당연하다.
안타깝게도 메르스는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 메르스는 RNA 바이러스 계열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다. RNA 바이러스는 구조가 불안정해 변이가 쉽게 일어난다. 우리나라에서 발병한 메르스 바이러스가 중동에서 발견한 메르스 바이러스와 100% 일치하진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백신 개발 자체가 쉽지 않다. 게다가 백신 개발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반해 백신 개발 성공률은 10% 미만이어서 경제적인 이유로 개발이 활발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백신이 없다고 메르스를 치료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메르스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 치료에 가장 많이 쓰는 치료법은 대증요법이다. 열이 나면 해열제를 쓰고 기침이 나면 멎는 약을 쓰는 것처럼 나타난 증상에 맞춰 이를 완화시키는 방법이다. 여기에 메르스는 항바이러스제인 리바비린과 면역증강제인 인터페론을 활용해 바이러스에 맞설 힘을 키우는 치료를 추가한다.
메르스를 두려워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나도 모르는 새 감염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메르스 감염 97%는 병원에서 일어났다. 삼성서울병원에서 80명이 넘는 감염자가 나왔고 지금도 계속 나오는 중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병원 응급실과 다인병실의 공간적 특성 탓이 크다. 메르스는 환자가 위중한 상태에서 바이러스가 가장 활성화되고 이때 밀폐된 공간에서 접촉한 경우 전염력이 굉장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응급실과 병실은 공기감염 우려가 있는 장소라는 점이 크다. 응급실에서는 인공호흡을 위해 기관 삽관을 시도하거나 기관 삽관 전 가래를 빼기 위해 석션(빨아들이는 장치)을 사용하다보면 다량의 바이러스를 함유한 에어로졸(수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작은 고체 입자나 액체 방울)이 생길 수 있다. 에어로졸은 공기를 통해 이동하기 때문에 기침을 통해 감염이 이뤄지는 범위인 2m보다 더 넓고 멀리 퍼질 수 있다. 실제 평택성모병원에서는 같은 병동에 있던 것만으로 감염된 환자가 있는데 역학 조사 결과 병실 에어컨 중 3곳의 필터에서 메르스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한국의 메르스 확산에 대해 공기전파 가능성을 제기하며 대비를 강조했다. 병원같이 에어로졸이 발생할 수 있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에어컨을 통한 바이러스 감염 확산, 먼지를 통한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병원 밖 공기전염에 대해서는 우려할 단계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만약 공기로 전염이 가능하다면 지하철이나 버스 등을 통해 전염된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대중교통이나 지역사회 전파 사례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를 해결하는데 지나친 공포가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맞다. 하지만 한 달 만에 메르스로 27명이 사망하고 격리를 경험하거나 격리 중인 사람이 1만명을 넘어선 상황에 이르게 한 건 메르스를 ‘독감’ 정도로 여기고 과소평가한 정부 탓이 크다는 걸 부인할 순 없다. 이럴 때 믿을 건 안타깝게도 스스로밖에 없다. 사람이 많은 곳이나 병원에 갈 때는 마스크를 꼭 하고 다녀온 뒤에는 손을 꼭 씻자. 예방수칙을 잘 지키는 것. 지금으로선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