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충격’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지난달 초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하면 세월호 참사처럼 충격을 줄 수 있다”면서도 추가경정예산(추경) 검토는 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가 지속되며 정부는 추경 편성을 결정했다. 최근 최 부총리는 세월호 참사 때보다 메르스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속도가 더 빠르다고 평가했다.
메르스가 본격 확산한 6월 초, 기획재정부가 공개한 경제지표가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달 10일 기재부는 이례적으로 공식 통계치가 아닌 업계 모니터링 수치를 취합한 ‘메르스 관련 경제동향과 대응방안’을 공개했다. 그만큼 메르스가 우리 경제에 빠르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6월 첫 주 백화점 매출액은 5월 1~2주 평균 대비 25.0%, 작년 동기비 16.5% 감소했다. 대형마트 매출액은 5월 1~2주 평균 대비 7.2%, 작년 동기비 3.4% 줄었다. 카드승인액은 작년 동기와 비교해서는 15.0% 증가했지만 5월 1~2주 평균 대비 5.5% 감소했다. 소비자가 외출을 꺼리며 인터넷 상거래는 5월 초 대비 3.2% 증가했다.
서비스업계 타격도 만만치 않았다. 방한 취소객은 5월 20일~6월 1일 2657명 수준이었지만 6월 4일 8593명, 5일 1만8297명, 6일 6865명, 8일 8813명으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6월 첫째 주 영화 관람객은 작년 동기비 54.9% 줄었다. 박물관 관람은 81.5%, 놀이공원 입장은 60.4%, 프로야구 관중은 38.7%, 미술관 관람은 48.3% 감소했다.
중소기업청이 6월 9일부터 13일까지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71.5%가 “메르스 발생 전보다 체감경기와 경영애로가 악화됐다”고 답했다. 중소기업 10곳 중 5곳은 메르스 확산으로 경영 피해를 보고 있으며, 소상공인·전통시장 모두 매출액과 고객 수가 감소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 등보다 메르스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달 10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메르스 확산 사태가 우리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은 과거 발생한 다른 외래 전염병 사례에 비해 한층 클 것”이라며 “비교적 높은 치사율 기록, 국내로 전파된 후 나타난 빠른 확산속도, 치료제가 전무하다는 점, 바이러스 변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공포와 두려움을 양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3년 발생한 사스는 전파력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지만 국내에 본격 확산되지는 않았고, 조류인플루엔자는 인체감염이 대규모로 확산되며 사망자가 발생한 사례가 아직 없다는 설명이다. 2009년 발생한 신종플루는 감염자 수에 비해 사망자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고, 타미플루 등 대응약이 있다는 점이 메르스와 다르다고 평가했다.
최근 메르스 확산이 주춤하고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정부와 한국은행은 아직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4일 “3주차 소비 관련 속보 지표를 보니 작년 동기 대비로는 여전히 감소했지만 감소폭이 1~2주차보다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며 “(메르스로 인한 소비 위축이) 좀 수그러들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평가”라는 비판이 일자 한은은 이 총재 발언이 와전됐다며 “일부 소비지표 부진이 소폭 완화된 조짐은 있지만 서비스산업 부진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기재부는 지난달 10일 이후에는 추가로 경제지표를 내놓지 않고 있다. 섣부른 경제지표 발표와 평가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관계자는 “집계는 하고 있지만 통계치가 아닌 업계 모니터링 수치기 때문에 공개는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