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포럼]ESS 핵심은 배터리가 아니다

[에너지포럼]ESS 핵심은 배터리가 아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숨을 쉬는 것처럼 정말 중요한 일 대부분이 무료다. 우리가 마시는 공기가 무료고 따사로운 햇살도, 산속에 샘솟는 샘물도, 하물며 친구와 우정이나 가족 간 사랑도 무료다. 하지만 만일 이런 것들이 유료였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기 싫을 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는 유료다. 하지만 무료처럼 사용하는 때도 적지 않다. 가령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할 때, 마치 식당 안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전기를 쉽게 옮겨 담는다. 다른 사람이 지불하는 전기를 사용하지만, 훔친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아마도 휴대폰 배터리에 담는 전기량이 너무도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시간에 따라 남아도는 전기를 저장함으로써 돈을 버는 세상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전기를 저장해 큰돈을 벌 수 있는 장치다. 전기가 필요한 곳에 전기를 공급한다는 점에서 발전소나 ESS는 유사하다. 그렇다고 발전소 100% 역할을 ESS가 대체할 수는 없다. 보조적이면서, 때에 따라 일시적으로 대체적 역할만 할 뿐이다. 하지만 이 보조수단이 때로는 발전소 이상의 기능을 발휘한다. 수조원을 들여 발전소를 짓지 않고도 ESS 충·방전만으로 대규모 전력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ESS시장에서 돈을 버는 실제 강자는 누구일까. ESS는 크게 세 분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전력저장 필요(수요)를 파악해서 그 해당 환경에 적합하도록 조절할 수 있다. 해외 전력시장에서 ‘디밸로퍼’라고 불리는 시장 개발자가 ESS 필요성을 이끌어내고, 에너지관리시스템(EMS) 업체들이 에너지 사용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솔루션으로 시장에 동참한다. 이후 하드웨어인 ESS가 투입된다. 여기서 ESS는 또다시 크게 전력변환장치(PCS)로 구성되는 전력제어부와 전력저장부(배터리)로 분류된다. 얼마 전 미국 테슬라가 전 세계 시장에 판매하겠다고 선언한 제품은 ESS 완제품이 아닌 전력저장부에 해당한다.

이처럼 디밸로퍼와 EMS를 가진 업체가 영화 제작자나 영화감독이라면, 전력제어부를 담당하는 업체는 주연급 배우, 전력저장부는 조연급 배우다.

우리나라 ESS 산업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조연배우가 주도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ESS 분야 세계 최고 수준 주연배우나 영화감독은 찾아보기 힘들다. 배터리 산업은 장치산업으로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이 때문에 재료비와 가동률이 핵심요인이다. 결국 배터리 생산원가는 어느 정도 추산이 가능하다.

주연에 속하는 PCS는 디자인 조립 분야다. 어떠한 토폴로지를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배터리에 비해 대규모 설비 투자도 필요하지 않다. PCS용 EMS 등 소프트웨어 기술은 이미 하니웰, 슈나이더일렉트릭, 존슨컨트롤, ABB, 시스코, IBM, 지멘스 등이 선도권을 장악했다.

우리는 앞으로 수십, 수백 조원 규모 ESS 시장이 다가온다 해도, 조연 배우만 갖고 과연 돈을 벌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세계적 감독과 주연배우를 길러야 한다. 소형 ESS 시장에서 일본은 태양광발전, 홈에너지관리시스템(HEMS)과 결합한 ESS 경쟁력을 쌓았다. 독일 역시 태양광을 중심으로 PCS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 등 대형 ESS 시장은 이미 감독과 주연, 조연 역할이 분명해졌다. 우리는 오직 배터리업계에 의해 ESS 시장과 정책이 끌려가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배터리뿐 아니라 인버터, PCS, PMS 등 전력제어부와 EMS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정책을 새롭게 짜야 한다. 그래야 10년 후 ESS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들러리만 서는 일이 없을 것이다.

홍유식 INI R&C 대표 harry@inirn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