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리 정부는 2029년까지의 국가 전력계획을 담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 기간 석탄화력발전은 더 짓지 않고, 원전 2기를 추가하기로 했다. 이에 시민·환경 단체는 탈원전·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외치고 나섰다.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사이에 낀 고민은 세계 각국 에너지정책 공통분모다.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가장 선도적으로 밀어붙여온 유럽 국가도 마찬가지다. 지금 유럽 각국은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선택 기로에서 안으로는 정책적 갈등을, 밖으로는 주변 국가와 마찰을 빚고 있다. 독일, 프랑스, 체코 현지 모습에서 우리나라 선택 길을 찾아본다.
◇신재생에너지 모범사례 독일 보봉마을
독일은 신재생 산업 육성 선도 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남부지방 끝자락에 있는 프라이부르크시 보봉마을은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으뜸 사례로 꼽히는 곳이다. 원래 프랑스군이 주둔해 있던 곳이지만 연합군 철수 후 지금은 프랑스군 막사를 개조해 친환경 거주지로 탈바꿈했다.
차가 없는 마을 조성을 위해 마을 주민은 카셰어링과 대중교통, 자전거 등을 이용하고 주차장은 거주공간으로 활용한다. 많은 공동주택이 3중 창호와 두께 30㎝에 달하는 목재를 활용해 단열 효과를 높인 패시브하우스 공법으로 지어졌다. 지붕형 태양광발전시설을 달아 전력을 생산하는 에너지플러스 하우스도 60여 가구에 달한다. 태양 궤도에 따라 집과 지붕형 태양광이 움직이고 테라스 난간은 태양열 온수설비로 가득채운 건축학자 롤프디쉬 자택 ‘헬리오트로프’는 필수 견학코스로 자리 잡았다.
마을 곳곳에 보이는 에너지 절약 문화와 신재생에너지 설비는 이 마을 자랑거리이자 다른 유럽 국가 벤치마킹 모델이다. 티에리 캐스토 프라이부르크시 친환경에너지TF 국장은 “초기 프라이부르크는 높은 집값을 피해 인근 지역에 조성된 마을이지만 주민과 학생이 자발적으로 친환경 마을 계획을 추진하면서 지금은 유명세와 전력판매 수익 덕분에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캐스토 국장에 따르면 보봉마을 에너지플러스 하우스는 자체 소비전력을 태양광 발전으로 모두 충당하는 것을 넘어 남은 전력을 인근 발전회사에 판매해 한때 매달 300유로에 가까운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초기 투자비용은 들지만 한번 에너지플러스 하우스로 리모델링하면 지속적으로 전력판매 수익을 얻고 집값도 오르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영원할 것 같았지만 곧이어 닥친 한계
보봉마을은 우수 사례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등 다른 국가 신재생에너지 선택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이들 역시 겨울 난방은 기본적으로 화석연료인 가스에 의존하고 있다. 3중 창호와 두꺼운 단열재로 여름에는 실내는 덥지만 습도가 낮아 그늘에만 있어서도 선선하다. 우리나라와 달리 에어컨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같은 이유다. 환경과 생활패턴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가장 큰 장벽은 지원금 한계다. 보봉마을 에너지플러스하우스가 높은 전력판매 수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발전차액지원제도(FIT) 덕분이다. 독일 정부는 신재생 전력에 기본 전력판매비와 함께 별도 지원금을 더해 준다. 문제는 재원이다. 독일은 신재생 지원금 재원 확보를 위해 기업과 일반 가정에 전기요금 부담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FIT 도입 이후 독일 신재생발전 비중은 12년간 6.6%에서 23.4%로 급증했지만 그 대가로 전기요금은 가정용과 산업용이 각각 연평균 6%와 8.4%씩 가파르게 올랐다. 신재생 발전설비를 갖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 에너지 빈부격차가 발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환경성보다 경제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독일 정부는 차츰 FIT 지원 규모를 줄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2년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를 도입하면서 FIT를 폐지했다. 올해 독일 FIT 지원 규모는 ㎾h당 12센트로 지난해와 비교할 때 5센트나 줄었다. 한 달에 300유로 전력판매 수익을 거뒀던 보봉마을 에너지플러스하우스도 지금은 약 100~120유로 수익을 버는데 그친다.
보봉마을은 최근 ‘제2 미래’라는 프로젝트를 앞세워 또 한번 ‘점프 업’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FIT 지원금 축소 압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두 번째 프로젝트가 과거와 같은 성과를 거둘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프라이부르크(독일)=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