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메르스와 사스, 그리고 작은 영웅들

[전문가 기고]메르스와 사스, 그리고 작은 영웅들

중국에서 유행한 사스(SARS)와 메르스(MERS)는 전염병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야 하고 병의 원인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한 직간접 접촉이어서 수비(예방)가 쉽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적절한 치료약도 없으니 유언비어나 공포심에 쉽게 휩쓸린다. 2002년 광둥성에서 첫 번째 환자가 발생한 사스는 중국에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안겨 주었다. 당시 내가 연수를 위해 머물렀던 베이징 시내는 거리가 텅 빌 정도로 차량이 적었고, 대학교 내 외국인 유학생들도 상당 부분 귀국했다. 반대로 병원은 환자로 넘쳐 나면서 병원 밖 건물을 병동으로 전환까지 하면서 환자를 치료했다.

중국이 사스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귀중한 교훈과 자산도 얻었다.

첫째, 의료인과 관련 공무원 등이 환자를 헌신적으로 치료하면서 ‘작은 영웅’이 곳곳에서 탄생했다. 위험이 있더라도 본연의 임무에 전념하는 것이 애국이고, 사회발전에 큰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중국 언론은 의료시스템 잘못도 지적했지만 헌신적으로 노력한 의료인들을 격려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영웅 탄생은 사회를 단결하게 만들고 어려움을 나눠 힘든 사람에게 재기할 수 있는 용기를 줬다. 다른 분야에서 많은 보통 시민이 자기 일에 헌신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됐다.

둘째, 사스 초기 정부가 환자 수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는 등 정보공개에 소극적이었지만 사태가 확대되면서 곧바로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사스에 전면 대결을 선언했다. 더불어 민관이 협력하는 새로운 모델이 생겨나 그동안 일방적인 정부 주도와 비공개 정책을 전개해온 중국의 성장방식이 업그레이드됐다.

셋째, 중국인 위생수준 향상은 물론이고 기초 의학 중요성도 새롭게 인식돼 관련산업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됐다. 손을 자주 씻고 침을 아무 곳에나 뱉는 습관이 급속히 줄면서 단번에 위생수준이 50년은 진보했다는 평가가 나돌았다. 사회발전을 위해 기초가 중요하다는 점이 재확인된 셈이다.

중국 사스 극복 경험은 우리에게 귀한 타산지석이다.

첫째, 일부 잘못도 있었지만 헌신적으로 본업에 충실한 보다 많은 의료인은 작은 영웅이다. 기본 책무에서 지적을 받았던 공무원도 있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작은 영웅이 공무원 사회에도 적지 않다. 그들을 격려하고 직무 중에 생명을 잃거나 손해를 보았다면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혜택을 주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둘째, 메르스 극복을 위해 남을 우선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이 필요하다. 메르스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몫이다. 지적하고 평가하는 것에만 매달리기보다 스스로 손해(격리)도 감수하고 대안을 고민하면서 정부 정책에 협조해야 한다.

셋째, 이번 위기를 우리 사회 기초를 다시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압축성장과 경제적 이익이 중시되면서 소홀했던 기초의약 연구와 위기대응시스템 등을 고민해야 한다.

넷째, 메르스로 인해 한국 이미지에 적지 않은 손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조기에 만회하기 위해 메르스 종료 후 종합 대책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새로운 대책은 경제 및 문화교류에서 가장 큰 파트너이자 중심지인 중화권에 집중돼야 한다. 특히 중국인의 한국방문을 단기간에 회복시키기 위해 비자비용을 면제하거나 일정 기간 무비자 입국도 검토해야 한다. 한류스타 해외공연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또 한중 FTA를 조기에 발효시켜 얼어붙은 교류에 다시 불씨를 살리고 기름을 부어야 한다. FTA는 단순히 무역과 투자에 대한 활력소에 그치지 않고 협정 체결국 간 신뢰의 상징이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중국에 사스는 분명 위기였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쌓은 경험은 경제대국으로 나가는 데 귀중한 밑거름이 됐다. 어떤 정책으로도 불가능했던 모순을 단기간에 해결했다는 평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도 메르스 극복을 통해 선진국 함정을 극복하고 우리 기초를 다시 다지는 기회로 삼는다면 지금의 위기는 결코 위기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최용민 한국무역협회 북경지부장 choi@kit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