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국민투표로 긴축안을 거부하면서 유럽연합(EU)이 출범 22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EU 창립회원국인 그리스에서 촉발된 반유로존 정서가 EU 분열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채권안 제안을 국민투표에 부친 이유는 유로존 탈퇴보다는 국민투표로 협상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투표가 사실상 그렉시트(Grexit:그리스 유로존 탈퇴)로 가는지를 묻는 투표나 마찬가지라는 분석이 팽배해지면서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 관심이 쏠렸다.
그리스 국민은 경제 불황에도 유로존에 안주하는 대신 그렉시트로 이어질 수 있는 ‘반대’에 표를 던졌다. 그리스와 채권단이 3차 구제금융 협상을 열어 대타협을 시도하겠지만 채권단이 대폭 채무 탕감책을 제시하거나 그리스가 의미 있는 양보안을 내놓지 않는 한 실현되기 어려워 그렉시트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 긴축안 거부는 유로존 재정, 금융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유럽인의 EU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큰 폭으로 후퇴했음을 보여준다. 유럽 경제 장기 불황은 금융위기를 겪은 나라와 비교적 건실한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독일 등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 소외감이 심각하다.
그리스 정부 희망대로 협상이 다시 시작된다고 해도 채권단은 불리한 처지에서 ‘연금 축소’ 대신 ‘채무 경감’ 카드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당장 그리스 실질적 채무불이행(디폴트)과 유로존 이탈 우려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닥쳤다.
그리스가 EU 균열에 불을 댕겼다면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영국의 EU 탈퇴, 즉 ‘브렉시트’다. 지난 5월 영국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EU 회원국과 EU 협약 개정 협상을 벌인 뒤 이를 토대로 2017년까지 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포르투갈의 유로존 탈퇴 ‘포렉시트’ 가능성도 제기된다. 올해 9∼10월 예정된 포르투갈 총선에서 긴축에 반대하는 사회당이 집권하면 포르투갈도 그리스와 비슷한 길을 갈 수 있다. 향후 그렉시트가 현실화하고 다른 국가 이탈로까지 이어진다면 유럽 통합 목표는 요원해질 수 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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