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 국민이 ‘긴축 반대’를 선택했다. 그리스는 물론이고 EU 전체가 안갯속에 빠졌다. 전면적 디폴트(채무불이행)와 그렉시트(그리스 유로존 탈퇴)로 이어질 가능성을 놓고 전망이 엇갈린다.
그리스 정부와 유럽 채권단 3차 구제금융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그리스와 EU, 세계 경제에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리스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반복하며 경제위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그리스는 2008~2013년 민간소비·정부지출·투자 등 수출을 제외한 전 내수 지표가 뒷걸음질쳤다.
그리스는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총 2400억유로 규모 구제금융 지원을 받았다. 그리스 정부 자체적으로도 강도 높은 긴축 재정을 실시했다.
상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경기침체가 심화하면서 ‘트로이카’로 불리는 국제통화기금(IMF)·유럽중앙은행(ECB)·EU집행위원회와 갈등이 커졌다. 그리스 국민 사이에서도 실업률이 높아지고 생활 여건이 나빠지면서 불만이 쌓여갔다.
그나마 지난해 2008년 이후 처음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났지만 근본적 경기 개선으로 해석되지 않았다.
내수 침체, 높은 실업률, 취약한 산업 경쟁력으로 인한 불안요인이 여전하다. 그리스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8.1%로 EU(15.3%),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16.4%)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리스 사회의 도덕적 해이를 탓하는 지적도 나왔다.
그리스 국민은 자국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여러 위험을 무릅쓰고 채권단 긴축안을 거부했다. 2010년 첫 구제금융 이후 5년여에 걸친 노력에도 별반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이에 대한 불만과 회의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채권단 제안을 거부해야 더 유리한 조건으로 재협상이 가능하다며 국민을 설득한 것도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앞서 치프라스 총리는 반대 의견에 바탕을 두고 협상력을 높여 48시간 안에 더 좋은 합의안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가 ‘반대’로 나왔기 때문에 그리스와 채권단은 다시 한번 협상을 진행하게 됐다. 서로를 바라보는 분위기가 우호적이진 않지만 협상 테이블은 꾸려야 한다. 당장 6일(이하 현지시각) ECB가 그리스 긴급유동성지원(ELA) 지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ECB가 ELA를 중단하면 그리스 시중은행은 영업 정상화가 어려워진다.
치프라스 총리는 국민 여론에 바탕을 두고 채권단에 더 유리한 제안을 내놓으라고 압박할 태세다. 그리스 경제가 회복하려면 부채 경감과 만기 연장이 필요하다는 IMF 보고서를 근거로 채권단에 채무 조정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도 바쁘게 움직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7일 유로존 정상회의 개최에 합의했다. 두 정상은 6일 하루 먼저 만나 공동 대응방안을 협의한다. 유로존 국가 고위관리도 이날 별도로 긴급 회의를 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로서는 그리스와 채권단 간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 점치기 어렵다. 채무 조정을 놓고 양측 의견차가 워낙 큰 탓이다. 국민투표 과정에서 치프라스 총리와 유로존 주요 국가 간 갈등이 심화된 것도 예상을 어렵게 한다.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면 그리스는 현 기술적 디폴트에 이어 전면적 디폴트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이는 곧 그리스 유로존 탈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스와 채권단이 파국을 막고자 극적 타결하는 시나리오도 아직은 유효하다. 채권단에는 그나마 최악을 피하는 것이 차선책으로 여겨질 수 있다. 회원국 어느 나라도 유로존이라는 거대한 틀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스는 오는 20일 35억유로 규모 ECB 채무 만기를 맞는다. 남은 협상 기간 의미있는 타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전면적 디폴트,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리스와 채권단이 우선 급한 불을 끈 후 추가 협상으로 어떤 방향으로든 국면 정리를 꾀할 가능성이 높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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