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게임 들어간 정유업계…두번째 승부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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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업계가 제2 구조개선 작업에 속도를 낸다. 과거 정제시설 확대나 고도화 투자로 글로벌 경쟁력 우위에 섰지만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수출길이 좁아진데다 중국기업 등 추격자 성장세가 빨라 생존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승부수는 ‘비(非)정유사업 특화’다. 생산효율을 극대화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선별 생산하는 차별화 전략으로 불황 극복에 나선다.

자료 : 한국석유공사 Petronet 통계를 이용하여 작성. 주 : 주요 수출대상국으로의 수출 추이는 총석유제품 수출 중 주요국으로의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
자료 : 한국석유공사 Petronet 통계를 이용하여 작성. 주 : 주요 수출대상국으로의 수출 추이는 총석유제품 수출 중 주요국으로의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

◇양보다 질로 승부

에쓰오일은 업계 최초로 올레핀 하류 부문 사업에 진출했다. 잔사유 고도화 콤플렉스(RUC)와 함께 올레핀 다운스트림 콤플렉스(ODC) 프로젝트로 미래 성장을 일군다는 전략이다. 에쓰오일은 현재 20만톤 규모 프로필렌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완료하면 값싼 잔사유로 고가 올레핀 다운스트림 제품과 휘발유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정유사업 수익성이 개선과 더불어 올레핀 특화 제품 생산에 나서게 돼 석유화학사업 고부가가치화를 이룰 수 있다. 업계에서 가장 먼저 투자에 나서는 것은 과거 파라자일렌(PX) 투자로 재미를 본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업계 최초 PX사업에 뛰어들어 지난 2012년 석유화학사업 부문에서 영업이익 8319억원을 달성했다. 이번 선제 투자도 성공을 거둘지 업계 관심이 집중된다.

SK이노베이션은 자원개발(E&P)사업 확대, 석유화학 제품 특화 및 중국 진출로 가닥을 잡았다. 이르면 올해 말부터 E&P사업 부문에서는 신규 투자가 이뤄질 전망이다. SK E&P아메리카가 주도하는 셰일가스 사업을 위해 관련 자원개발 기능을 북미로 이전하면서 준비는 마쳤다. 김기태 E&P부문 사장은 “북미 현지에서 셰일가스업체 인수를 위한 작업에 나서고 있다”며 “저유가로 채산성 압박을 받는 북미 셰일 채굴기업을 대상으로 인수합병(M&A)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이 E&P사업을 핵심 사업으로 키우는 배경은 그동안 확보한 전문성과 성공 경험 때문이다. 지난 2000년 브라질 3개 유전 광구를 모두 7억5000만달러에 매입해 덴마크 머스크오일에 24억달러에 매각하며 200%가 넘는 차익을 남기는 등 재미를 봤다. 유가가 급락하기 이전인 지난해 상반기 석유 개발사업 영업이익은 2170억원으로 전체 영업이익 1754억원보다 많았다. E&P 매출액은 전체 1.3%에 불과했지만 영업이익률은 50%에 육박했다.

석유화학사업도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구조로 전환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자회사 SK종합화학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복합화학기업 사빅과 넥슬렌 생산·판매를 위한 합작법인 설립 협상을 마무리졌다. 넥슬렌은 SK종합화학이 독자 개발한 고성능 폴리에틸렌의 브랜드 명이다. 고부가 필름과 자동차, 신발 내장재, 케이블 피복 등에 주로 쓰이며 기존 범용 폴리에틸렌보다 내구성·투명성·가공성 등이 우수하고 단가가 비싸다. 다우케미칼, 엑슨모빌, 미쓰이 등 글로벌 메이저 화학사가 독점한 프리미엄 제품 시장에서 경쟁을 펼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화학사업 거점을 중국으로 확장하는 전략과 더불어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량을 늘려 수익성을 강화하는 전략이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약한 대외 환경, 투자로 뚫는다

정유업계가 불확실성을 뒤로 하고 투자에 속도를 내는 것은 앞으로도 상황이 호락하지 않다는 위기 의식 때문이다. 정유업계는 2000년대 대규모 설비투자, 시장 다변화로 수출 중심 산업구조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정제능력은 1992년 하루 137만배럴에서 2013년 288만배럴로 두 배 이상 확장하며 성장가도를 달렸다. 성장세는 2012년 이후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글로벌 공급량 증가로 수출량이 줄기 시작했다. 국내 재고량이 증가했고 마진이 낮은 중개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수익이 악화되는 악순환에 노출됐다. 지난해 국내 석유제품 재고량은 전년 대비 6.5% 증가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싱가포르 수출물량은 30.0% 확대된 반면에 수출금액은 2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주요 수출대상국인 미국과 중국, 일본으로 석유제품 수출량은 전년 대비 각각 9.2%, 8.4%, 10.3% 감소했다. 금액 기준으로는 15.1%, 16.2%, 18.4%로 더욱 크게 하락했다.

공급과잉은 개선의 기미가 없다. 이는 곧 수출 감소 및 정제마진 하락 고착화로 이어지고 있다. 2020년 석유제품 글로벌 수요는 2013년 대비 690만배럴 늘어난 9690만배럴로 예상된다. 2019년까지 신규 정제설비 증설 계획이 하루 830만배럴 정도로 추산되는데 공급과잉이 극심할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최근 정유업 글로벌 환경 변화 원인을 ‘유가 급락’과 ‘구조적 공급과잉’으로 진단하고 정유업계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업계가 과거에도 탈정유 전략을 구사하며 석화 등 사업 투자를 늘려왔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공급이 늘어나다 보니 이마저도 최근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며 “수년 뒤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지금 특정 분야로 방향성을 갖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