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작년 7월 16일 취임하며 강조한 것은 ‘경제 부흥’이었다. 그는 “우리 경제가 저성장·축소균형·성과부재 함정에 빠져 있다”며 “경제 부흥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최 부총리는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고 있다”며 “연말까지 예산편성과 세법개정 등으로 경제를 본궤도에 올리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표현은 바뀌었지만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최 부총리 목표는 ‘경기부양’이다. 이는 그동안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 소비자 물가, 수출 등 각종 경제지표는 그동안 별다른 진전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일각에서는 이런 결과가 메르스 등 돌발변수 영향이 크며, 구조개혁 착수 등 의미 있는 성과도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부양을 위한 쉼 없는 정책 발표…추경까지 이어져
최 부총리 취임 후 두드러진 변화는 정책 발표가 잦았다는 점이다. 기재부가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건을 제외해도 주요 정책이 30여개에 달한다. 12개월 동안 집계한 것이니 한 달에 2.5개꼴로 굵직한 대책을 발표한 셈이다. 이는 그만큼 정부가 다양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는 의미 외에도, 예상치 못 한 변수가 많았음을 뜻한다.
처음 발표한 정책은 ‘새 경제팀 경제정책방향’이다. 취임 후 일주일여 만에 공개한 경제정책방향 핵심은 46조원+α 규모 자금 투입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과감하고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내수활성화·민생안정·경제혁신을 위한 각종 계획을 담았다. 서민·중산층 소득 확대를 위한 기업소득 환류세제, 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 도입으로 주목 받았다.
당시 최 부총리는 “내수 부진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며 “가계와 기업이 희망을 갖고 신명나게 소비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신바람을 불어넣겠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이후에도 쉴 새 없이 정책을 발표했다. 8월 6차 투자활성화 대책,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공개했고 9월에는 장년층 고용 및 자영업자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경기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대외 여건도 악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엔화 약세가 심각해지며 10월에는 엔저 대응과 활용방안을 발표했다. 위안화 거래 활성화 방안도 같은 달 공개했다.
취임 후 5개월여 정책에 대한 평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엿볼 수 있다. 경제정책방향은 대대적인 구조개혁과 예산편성 시 원점 재검토, 핀테크 활성화를 골자로 한 정보기술(IT)·금융 융합지원 방안을 담았다. 이와 함께 정부는 “2015년 상반기 중앙·지방재정 조기집행 목표 58%를 달성하고 46조원+α 정책패키지의 잔여분인 15조원을 최대한 조기 집행하겠다”고 설명했다. 경기 회복세가 여전히 뚜렷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올해 들어서도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 추진방향, 7차 투자활성화 대책, 우리사주제도 활성화 방안, 민간투자사업 활성화 방안 등을 연이어 공개했다. 2013년 세법개정으로 ‘13월의 세금폭탄’ 논란이 일며 연말정산 보완 대책 등도 발표했지만 상당수는 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작년 12월부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를 이어가며 우리나라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졌다. 4~5월 소비 심리가 일부 개선 조짐을 보였지만 6월 메르스 사태로 우리 경제는 다시 침체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 부총리는 지난달 메르스 대응방안,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해외투자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최근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확정했다.
◇부정적 평가 많아…남은 과제는 ‘성과 가시화’
최 부총리의 1년을 성공과 실패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민이 기대했던 ‘경제 살리기’가 아직 가시화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정적 평가가 많다.
무엇보다 경제지표가 좋지 않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개월 연속 0%대를 기록해 디플레이션 우려가 계속되고 있으며 수출 부진은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광공업생산과 출하 부진이 지속되고 있고, 서비스업생산 증가세도 정체되는 등 경기 전반이 둔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1%로, 한국은행은 2.8%로 낮추는 등 암울한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야심차게 추진한 공공·금융·노동·교육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은 더딘 속도가 문제로 지적된다. 어려운 과제에 착수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성과 창출이 늦어지며 실효성 논란이 생겼다.
재정건전성 악화와 가계부채 심화도 문제다. 정부의 세수결손은 3년 연속 이어졌고, 지난해만 11조원에 달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세수결손의원인은 지난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충격 등으로 예상보다 경기회복이 지연된 점, 정부가 세입 목표치를 높게 설정하는 경향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가계부채가 수년 사이 급증해 1000조원을 넘었지만 정부는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부동산·주식 시장 활성화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정부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해 부동산 시장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방만한 공공기관을 바로잡고 대대적 규제개혁을 추진한 점도 성과로 인정받고 있다.
최 부총리는 최근 지난 1년 동안 성과에 “세월호 여파 속에서도 지난해 경제성장률(3.3%)은 잠재성장률에 근접했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경제가 최악의 축소 국면으로 떨어지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냈다고 본다”며 “부동산 시장과 주식 시장은 경기 회복 초반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아쉬운 점으로는 미약한 경제지표를 꼽았다. 최 부총리는 “2012년 2.3%, 2013년 2.9%, 2014년 3.3% 성장을 해 올해 성장률이 최소한 작년보다는 나을 것으로 봤다”며 “그러나 수출 부진과 세계경제 성장률 하향, 메르스 사태로 올해 경제가 예상했던 성장 경로를 밑돌게 된 것을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남은 과제는 성과 가시화다. 1년 동안 발표한 정책이 현장에서 정상 가동되도록 하고, 추경 효과를 극대화하는 일이다. 재정건전성 강화도 시급한 과제다. 이와 함께 구조개혁 작업을 지속해 경제 체력을 강화하는 것도 최 부총리가 할 일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 회복이 더딘 데에는 정책적 문제도 있지만 메르스 등 돌발변수가 큰 영향을 미쳤다”며 “저성장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한 단기 대책과 경제 체력을 다지기 위한 중장기 대책 추진을 가속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