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관련 포럼 위원으로 원전을 가는 길이었다.
버스에서 다른 위원과 나란히 앉아 원전 근처의 울창한 숲을 보며 말했다. ‘퇴직 후에 이곳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고.
내 말에 놀란 그가 답했다. “오랫동안 원자력 기관에서 일하면서도 원전 지역에서 살아볼 생각을 했다니… 원전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군요. 그렇다면 원전이 정말 위험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맹자는 활을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든 자신이 만든 화살이 사람을 상처나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방패를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든 자신이 만든 방패가 사람을 보호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는 사례를 들면서 신중한 직업 선택의 필요성을 가르쳤다.
관점의 차이가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식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을 배웠던 경험이 있다.
원전 지역 주민을 처음으로 찾아 가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만남을 전화로 약속하고 동료와 사무실로 찾아가 인사를 나누고 나니 얘기는 다른 곳에서 하자며 앞장선다.
우리가 따라간 곳은 마을회관 한 켠에 있는 방이었다. 오후 시간 마을회관은 아무도 없었다. 썰렁한 마을회관에서 잠시 어색해 하던 우리는 그곳에서 얘기를 나눈 후에 주민과 저녁을 같이 먹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수개월이 지나서야 왜 우리가 골방 같은 마을회관에서 얘기를 나누어야 했는지 알았다. 당시 원전 지역 주민은 우리를 사업자의 일부로 인식한 시절이었고, 그런 이유로 우리와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모습을 다른 주민이 보면 자신들이 불편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로서는 주민을 기꺼이 찾아가 만나는 입장이었지만, 우리를 맞이한 주민은 불편을 무릅쓰고 만나주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불편한 기색을 잘 참고 억눌렀다고 자위하며 돌아온 출장이었지만 그들은 불편한 눈길을 잘 감내하며 만나주었다는 생각으로 밤을 맞이했을 터였다.
서로 다른 관점 때문에 그 만남은 공감하지 못하는 자리가 되었던 셈이다.
원전 지역 주민과 소통을 시도하던 초기에 연구원 일부는 소통은 정부 역할이니 원자력안전기술원은 원자력 안전의 기술적 내용만 책임지면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원자력 안전에 대한 국민 기대치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소통 문제로 에너지를 분산하지 말고 안전을 묵묵히 지키는데 노력을 집중하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진심은 주민에게 전달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원전 지역주민, 시민단체 등과 함께 원자력 안전 워크숍을 매년 개최했다. 소통의 첫걸음이었다. 워크숍 처음 보고서는 종합토의 녹취록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나중에는 종합토의 요약만 담았다. 이는 원자력안전기술원에 대한 원전 지역 주민 신뢰가 쌓였음을 의미한다.
사실 2002년 지역 주민은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사업자 일부이거나 또는 사업자 편에서 일하는 조직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2005년에 오해가 어느 정도 해소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즉 원전 주민의 메시지를 요약해도 본래 뜻을 왜곡시키지 않으리라는 신뢰가 싹텄기 때문이다.
기관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면 공개정보의 상세 여부가 소통의 장애 요인이 되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다.
최근 정부3.0은 정부 운영을 제대로 하려는 노력에 더해 공공정보를 적극 개방·공유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부응해 원자력안전기술원도 원자력안전 규제 심사와 검사 결과를 더 자발적이고 신속하게 공개하기 위한 체제를 준비하고 있다. 올바른 정보를 선순환하려는 소통의 노력이다.
원전으로 향하던 우리 얘기는 차창 밖 풍경으로 옮겨갔지만 말없이 더 놀라워했던 건 나 자신이었다. 일반 국민과 원자력 종사자 간 인식과 관점 차이가 여전히 큰 현실을 직면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돌아볼 때 원자력 소통의 멀고 먼 길도 공감과 신뢰로 계속 나아간다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리라 기대하게 된다.
정윤형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 yhchung@kins.re.kr